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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니 Aug 03. 2023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엄마에게만 육퇴 후 자유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한 지 2주가 되어간다. 거기에 이번 주는 막내의 어린이집 방학까지 시작되어 삼 남매 합체다. 그런데 남편은 휴가는커녕 일이 바빠 야근을 하는 날도 많았다. 무더운 한여름에 방학을 맞은 게으른 엄마에게는 아이들과 집 앞 마트에 가서 잠깐 장을 보거나, 첫째와 둘째를 학원에 데려다줄 때의 짧은 외출이 최선이었다. 잠깐만 밖을 다녀와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집 앞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오늘 병원 진료가 예약되어 있어서 혼자 외출해야 했고 다행히 남편이 오전 반가를 쓸 수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린 진료 덕분(?)에 남편이 아이들 점심까지 먹이고 뒷정리를 해두었다. 남편은 내가 도착하자마자 출근을 했고, 나도 얼른 점심을 먹고 첫째와 둘째를 학원에 데려다줬다. 이제 막내의 낮잠을 재울 일만 남았다.


  자기 싫어하는 막내를 만화 하나 보게 해 준다고 꼬셔서 방으로 데려갔다. 패드로 동영상 하나를 본 후 우리 둘은 같이 누웠다. 다년간의 노하우로 터득한 낮잠 재우기 방법 중 하나는 엄마가 잠드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정신을 놓고 잠이 들었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서일까? 아이들이 돌아왔는데도 나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샤워를 하라고 말하고는 금세 다시 잠들었다. 오빠들이 샤워하는 소리를 듣고 막내도 잠에서 깨었다. 그러고는 "엄마~ 나도 초코파이 먹어도 돼?"라고 물어본다. 아마 아이들이 학원을 다녀와서 배가 고팠는지 초코파이를 먹었나 보다. 그 와중에 흘릴 것이 걱정되어 "그릇에 대고 먹어~"라고 힘없이 말하는 나의 눈이 다시 감겼다.


  그리고 30분쯤 지났을까.. 여전히 아이들의 샤워소리가 났다. 그리고 깔깔대고 웃는 소리. 필시 저것은 물장난이 한창일 때의 소리다. 얼른 정리하고 나오라는 내 말에 아이들이 나와서 머리를 말린다. 그러고는 제일 용감한 막내가 꺼낸 패드로 셋이서 만화를 보고 있다. 원래는 내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동생의 용기 열차에 첫째와 둘째가 편승했다. 그래도 셋이서 사이좋게 보고 있는 모습에 모른 체하고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처음에 눈에 띈 것은 식탁 위... '아.. 초코파이 먹는다고 그랬지. 그릇에 대고 먹기는 했네. 그런데 저렇게 작은 그릇을 꺼냈네.' 있으나마나 한 그릇 주변은 난리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거실에 장난감은 이 정도면 소소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샤워를 마친 흔적들.


엄마의 낮잠 30분이면 아이들은 여러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치우다 말고 나도 간식이나 먹자 싶었습니다.


  우선 제일 손이 많이 갈 것 같은 식탁을 정리하다.. 에잇! 나도 간식을 먹기로 했다. 불도 켜지 않고 달달한 과자를 씹고 믹스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니 내 몸으로 들어가는 당분이 정신을 들게 해 주는 듯했다. 정신이 들고 생각이라는 것을 시작하자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아이의 낮잠 시간이 엄마에겐 꿀 같은 시간이라고 했던가. 반대로 엄마의 낮잠 시간도 아이들에게 꿀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아이들은 조용히 자기들 먹고 싶은 거 먹고, 장난감을 가지고 들어가 샤워하며 그동안 못했던 물장난도 실컷 하며 웃고 떠들었다. 엄마 허락이 있어야만 열 수 있었던 패드도 살며시 가져다가 보고 싶은 만화를 보며 자기들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것은 육퇴 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후 맥주 한 캔 따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틀어놓고 휴식하는 나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식탁에 앉아 믹스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을 본다. 이불 위에서 뒹굴며 만화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자고 일어나 아이들이 어지른 것들을 치우며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어른들의 시간과 아이들의 시간은 물리적으로는 같다 할 수 있겠지만, 그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서로 다른 것이다. 조용히 앉아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나의 시간이라면,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을 쌓다가 무너뜨리고 어지르고, 장난을 실컷 하며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는 것이 그들의 시간일 수 있다. 그동안 미처 아이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도 자는 엄마를 깨우지 않고 저희들끼리 그 시간을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었다 생각하니 이 정도 뒷정리는 애교로 느껴진다. 나도 덕분에 낮잠을 잘 잤고 피로도 풀렸으니 오늘 우리는 서로 윈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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