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이 8월 아니고 9월이라구요.
올해 휴직하기로 결정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연초에 했다. 그 생각을 한 날은 아이들 학교의 학사일정을 받아 든 날이었다. 학교에서 오래된 새시를 교체하고, 필요한 부분 공사를 여름에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여름방학이 두 달이었다. 두 달... 여름방학이 두 달이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휴직하지 않았다면 학사일정이 맞지 않아서 아이들을 봐달라는 부탁을 누군가에게 해야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래도 학교 공사와 나의 휴직 시기가 겹쳐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방학 시작은 엄마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더구나 올 해는 둘을 데리고 있어야 하니 더 걱정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조삼모사다. 여름방학이 길어지면 겨울방학은 짧아진다. 법적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수업일수가 있으므로 모든 방학을 합친 기간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으레 여름방학은 한 달, 겨울방학이 두 달쯤 된다고 생각했다가 그 반대가 된다니 조금 걱정이 된다. 더 가까운 방학이 길다는 사실도 걱정이고, 한겨울 추위에 아이들이 등하교할 것도 걱정이다. 그러나 둘 중 더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단연코 가까이에 다가올 여름방학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쯤 다른 학교는 벌써 개학했거나, 방학이어도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남겨두고 있겠지만 우리 집 여름방학은 그 한가운데에도 못 미친 시점이다. 지인들이 아이들 개학은 언제냐고 물을 때 9월 20일 넘어서라고 말하면 다들 되물었다. "8월 20일?" "아니요. 개학이 8월 아니고 9월이라구요." 나는 같은 대답을 여러 번 하면서도 할 때마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해주면 매번 한숨을 쉬거나 나를 따라 웃었다.
그래도 아이들 방학이 두 달이니 무언가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질 것 같기도 했다. 일단 여름방학 특강 수영 수업을 알아보았다. 아직 어리긴 하지만 여름이 수영 배우기에는 딱 좋은 계절 아닌가. 이 동네에서 수영 수업을 하는 곳이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이 등록하는지 여름방학 특강을 두 달 동안 진행한다고 했다. 두 달이면 적어도 물에 뜨고 앞으로 나가는 것 정도는 배울 수 있을 듯싶었다. 그래서 수강료가 비싸도 마음먹고 질렀다.
공부 계획도 세웠다. 요즘 게을리하던 파닉스 공부를 다시 매일 하자 싶었다. 둘째는 수학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무리하고 싶지 않아 아직은 일주일에 한 번 간다. 그래서 연산은 내가 따로 문제집을 풀어주는데 그것도 속도를 내볼까 했다. 책도 꾸준히 읽고 독서록도 하루에 하나씩 써보자 했다.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고 휴식을 취하며, 놀이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알차고 보람된 방학”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두 달이라는 여름방학이 주어지자 나는 자꾸만 여러 가지 결심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마냥 즐거운 방학인 것을 나는 자꾸만 무언가를 성취하는 방학이 되자고 다짐했다. 내 방학도 아니면서... 내 방학도 아닌데 욕심을 내서는 결국 내가 병이 났다.
욕심을 내다가 병이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예전에 지인의 남편이 했다던 말이 생각났다. 어머님이 교사셨는데 방학이 그렇게 싫었다고 한다. 이유는 방학만 되면 엄마가 뭘 그렇게 시켜댔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의 어머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 어머니에게는 방학에만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이 주어졌고, 그 기간 안에 부족했던 것을 채우고 무언가 하나는 해놓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을 한 지인의 남편 마음도 이해가 간다. 아이들이 놀고 싶어만 하고 이것저것 하자고 하는 엄마에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을 보며 그분도 어릴 때 이랬겠구나 싶었다.
내가 아프고 나서 그런 걸까,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 날씨 때문일까. 요즘은 아이들에게 많이 놀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나의 학창 시절에도 방학은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는가. 마음껏 늦잠도 자고, TV도 보고, 배 고프면 밥 먹고, 과자도 아무 때나 까먹고. 나는 내향형 인간이라 친구를 많이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매일 학교에 가야 하는 의무가 사라지는 그 기간에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즐거웠다.
그때 우리 부모님은 방학이니 이것저것 하라고 시키시지 않았다. 그럴 만큼 형편이 여유롭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방학 동안 충분히 쉴 만큼 쉬고 방학숙제 같은 최소한의 할 일만큼만 하도록 하셨던 것 같다. 여름방학이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가까운 강과 계곡에 데리고 가셨다. 실컷 물놀이도 하고, 물고기도 잡으며 놀아라 하셨다. 방학이 되면 부모님께서 자주 하셨던 말이 귀에 맴돈다. "우리 00이, 방학돼서 신났네!" 나는 대답 없이 긍정의 미소를 지어 보였던 것 같다. 그 말이 부모님도 나의 방학을 내 시간으로 인정해 주는 것처럼 들렸다.
아직 방학이 5주 하고도 며칠 더 남았다. 다시 생각하니 또 헛웃음이 나온다. 5주라니... 그래도 날씨가 제법 선선해지니 전보다 밖에서 더 많이 놀 수는 있겠다. 9월이면 시원해지니 궂은 여름 날씨로 남편이 비상근무를 해대느라 가지 못한 여름휴가를 그때 다녀올까 싶기도 하다. 전에는 한여름 더위에 아이들을 따라 놀이터에 나갈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왔는데, 이제 한 번씩 불어와주는 바람 덕분에 견딜 수 있는 날씨가 되었다. 어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파트 가장자리에 마련된 짧은 산책길을 걸어보기도 했다. 아직 땀은 났지만 숨이 턱턱 막히던 그 날씨는 아니었다. 오히려 개운한 느낌이었다. 땀이 많은 첫째는 여전히 땀을 줄줄 흘리며 힘들다 했지만 그래도 놀이터가 보이자 두 아이들은 그네를 타며 신나게 웃었다. 아직은 엄마가 밀어주는 그네가 더 좋은 어린아이들이다.
이제 놀 궁리도 좀 해야겠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에만 치중했던 내 마음에도 방학을 줘야겠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남은 방학 동안 자꾸만 뭘 더 하려는 나를 잠재우기 위함이다.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주고, 같이 웃으며 신나는 방학을 보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내 손 끝으로 나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아이들의 방학이다. 충분히 쉴 만큼 쉬고 최소한의 일만 하면 된다. 아이들은 지금 하는 일만 해도 최소한의 일은 충분히 넘는 것 같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 아들, 아직도 방학이 5주나 남아서 신나겠다!"
(하핫... 저 말을 따옴표 안에 써넣으니 현실을 직시하는 엄마에게서는 여전히 헛웃음이 나오기는 합니다. 역시 엄마의 방학은 쉽지 않은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