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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n May 31. 2022

음악극도, 신체극도 아닌 어딘가 애매한 <맥베스>

극단 초인 명작연극 시리즈, 음악극 <맥베스> 리뷰

    주로 배우의 움직임을 통한 감각적인 창작활동을 해오던 극단 <초인>이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고전 <맥베스>이다. 셰익스피어는 시적인 긴 대사의 은유와 운율을 통한 '말의 맛'의 대가로 대표되곤 한다. 움직임이 주는 감각을 살리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가장 큰 장점인 '말'을 제거해나가야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극단 <초인>이 선택한 방식은 한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세밀하고 철학적으로 살펴보는 대신, 무대 위 계단이 암시하는 권력제도 안에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권력을 가지려는 욕망과 이를 지키고자 하는 불안감, 까마득한 윗사람들의 싸움에 눈치를 보며 희생해야 하는 소시민의 고통은 어느 시대에서나 반복되는 것이다. 작품은 의상에서도 맥베스와 왕, 또한 서민들까지 많은 차이를 두지 않는다. 원작에서 선한 희생양으로 표현되던  왕 역시도, 극단 초인의 각색 속에서는 맥베스와 같은 권력욕과 불안감으로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고 하는 인물일 뿐이다. 또한, 전쟁에 끌려간 병사들의 사연과 그들이 누구의 편에 서야 하나 고민하는 장면의 추가는, 맥베스라는 인물이 느끼는 욕망과 불안이 오로지 그만의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함께 제시되는데, 객석까지 전달되는 박자감과 에너지를 통해 무대 위 보편적인 상황과 정서가 관객에게까지 감각적으로 확장되기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바다 건너 서양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우리 전통 예술에서 익숙한 수묵화 이미지와 북소리의 주된 활용은 이야기가 감각 안에서 국경을 넘어 보편적으로 호소될 수 있도록 하는 요소로 느껴졌다.

극단 초인의 음악극 <맥베스> 포스터. 작품은 2022년 5월 6일부터 6월 15일까지     꿈의 숲 아트센터 퍼포먼스홀에서 공연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극은 철저하게 말의 논리로 이루어진다. 연극에 신체의 움직임을 도입하는 주된 목적 중 하나는, 말로 정의해버리기에 방대하고 다층적인 어떤 것을 관객이 풍부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대사를 줄이는 데 있어서, 원작의 '중심 문장'을 추려 대사로 삽입한 듯 한 방법을 택해 언어가 주는 직설적이고 일방향적인  ‘정의’를 원작보다도 더 강화시킨다. 움직임은 거기에 더해지는 부수적인 요소로서, 오히려 대사를 어떠한 방향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더 강하게 안내하며 작품이 담아낼 수 있는 것들을 한층 좁힌다. 게다가 배우들의 움직임의 모습은 너무나 명시적으로 특정한 언어적인 개념을 유추하게 만든다. 권력자 앞에서 아첨을 부리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개'의 움직임을 하는 것, 초조함을 나타내기 위해 다리를 마구 떨며 이동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분명 표현 양상에 있어서는 신체의 움직임이지만, 기능적으로는 배우들이 대사를 통해 '초조하다, 초조하다, 초조하다'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맥베스 부인이 마이크 들고 객석에 긴 연설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나약함을 숨기라’고 말하는 장면은, 물론 청자를 맥베스라는 한 명의 인물에서 객석 전체로 확장시켜, 그녀의 욕망과 그로 인해 맥베스가 겪을 혼란을 객석에까지 전하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으로 인해 여태까지 조금이나마 무대로부터 감각으로 전해지던 ‘에너지’는 완벽하게 ‘이성적 의미’로 정리되고 만다.

    또한 작품은 ‘음악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하지만 음악이 중심이 되는 장면은 없다. 한 연주자가 객석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북을 연주하는 것이 전부이다. 물론 ‘음악’이라는 것을 명확한 멜로디가 있는 존재로만 좁게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극에는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주는 음악성도 없고, 움직임이 주는 리듬은 발생하는 과정에서 쉽게 소멸된다. 극단 초인의 음악극 <맥베스>는 고전 작품을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로 쉽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셰익스피어는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친숙하게 다가가 셰익스피어 '입문'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로 가족 단위의 관객들에게도 닿을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접한 이들이 원작의 가치를 얼마나 체감하게 될지, <맥베스>를 궁금해하기나 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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