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밥상

by 지로 Giro


우리 집은 이상한 조합이었다. 채식주의자인 엄마와 고기를 사랑하는 아빠의 만남. 강원도 출신인 엄마는 김치를 담백하게 담갔고, 남도 출신인 아빠는 젓갈을 아낌없이 넣었다. 그렇게 우리 집 밥상엔 언제나 두 가지 스타일의 김치가 나란히 놓였다.


육식은 꼭 먹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아빠는 자연스레 부엌을 차지했다. 그리고 아빠의 손맛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된장, 고추장, 묵은지 고등어찜, 갈치찜...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 최고였다. 그래서였을까. 저녁시간이 되면, 우리 집 식탁엔 자꾸 식구가 늘어났다. 아빠의 친구들이 하나둘 밥 냄새를 따라 들이닥쳤다.


그게 나는 정말 싫었다. 인사도 해야 했고, 잠옷 차림으로 밥도 못 먹었다. 낯선 어른들이 웃으며 앉아 있는 그 풍경은 사춘기 소녀에겐 그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항상 허허 웃으며 말씀하셨다.

“수저 한두 개 더 올리는 게 뭐가 대수라고.”


음식을 넉넉히 하지 않은 날엔 우리 몫이 줄기도 했다. 그래서 아빠는 점점 양을 더 많이 하셨다. 하지만 뒷일은 우리 몫이었다. 설거지는 엄마와 나, 부엌 정리는 언니가 맡았다. 엄마는 종종 푸념하셨다.

“이 집은 왜 이렇게 밥을 많이 해대는 거야...”


가끔은 나도 참다 못해 작당을 했다. 영식이 아재가 너무 자주 오는 바람에, 어느 날 그의 국에 소금을 몰래 더 뿌렸다. 짜서 못 먹고 가길 바랐다. 하지만 아재는 말도 없이 꾹꾹 밥을 눌러 말아 먹고는, 조용히 그릇을 비우고 갔다. 그날 이후로는 예전처럼 자주 오지 않았다. 그래도 올 때면 뻥튀기 한 봉지, 혹은 사과 몇 알을 꼭 들고 오셨다.


세월이 흘러 나도 고향을 떠났고, 아재는 제주도로 간 아들을 따라 이사를 갔다고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는 사람을 좋아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다.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음식으로 마음을 전했고, 된장이 맛있다 하면 된장을, 묵은지가 맛있다 하면 묵은지를 바리바리 싸주셨다.


그게 바로 인심이었구나.

그리고 그게, 아빠의 방식으로 세상과 나누는 사랑이었구나.


어버이날을 맞아, 오늘은 하늘나라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친구들과 나누고 계실 아빠를 생각해 본다.


아빠, 당신의 밥상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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