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오래전부터 곱슬머리의 저주 아래 있었다. 언니는 운 좋게도 무탈했지만, 나는 반 곱슬, 그리고 남동생은 완전한 곱슬머리를 타고났다. 이 말이 낯설게 들릴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흑인들의 곱슬을 떠올리면 얼추 비슷하다. 촘촘하고 뽀글뽀글한 그 머리는, 손질을 하지 않으면 금세 부풀어 올라 마치 물을 가득 담은 양동이처럼 커 보였다.
남동생은 그 불어난 머리숱을 감당할 수 없어 열흘에 한 번은 미용실을 찾았다. 나 역시 파마가 필요 없을 정도로 웨이브가 자연스러웠지만, 그런 자연스러움이 싫었다. 나는 오히려 생머리에 대한 환상이 컸고, 직장을 다니던 시절부터는 3개월에 한 번씩 꼭 머리를 펴야 했다. 고데기, 매직, 크림 스트레이트… 그런 이름의 시술이 내 삶의 일부분이 됐다.
그리고 내 유전자는 내 딸에게도 너그러웠다. 좋은 것도 물려주었지만, 이 지독한 곱슬머리도 함께였다. 아이가 자라면서 이 머리는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었다. 따주지 않으면 퍼지듯 부풀어 올라, 마치 자기관리를 포기한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다. 나도 안다. 그 말, 너무 잘 안다.
오늘 아침, 아이의 머리를 땋아주며 또 한 번 들은 말이 마음에 박혔다.
“엄마, 나 이 머리 때문에 진짜 스트레스 받아요. 정리 안 하면 게을러 보인단 말이에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건 미용의 문제가 아니고, 정체성과 자존감의 문제였다. 머리 한 올로도 세상이 평가하는 시선이 존재하는 시대. 곱슬머리 하나로 태생적인 열등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라지만, 나 역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던 사람이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다음 주, 개강 전에 아이 손을 잡고 미용실로 갈 것이다. 세 시간쯤 걸릴 것이다. 곱슬머리를 생머리로 만드는 매직스트레이트 시술. 일시적일지 몰라도, 그 머리카락이 아이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줄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다.
유전자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다듬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다듬어진 머리처럼, 우리 아이의 마음도 조금 더 단정하게,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표지 사진: 이미지 투데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