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아직 두 아이가 유치원생이던 시절이었다.
나는 장난삼아 아이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 순위를 매겨 보라”고 부탁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도란도란 속삭이더니, 신중한 얼굴로 순위를 적어 내려갔다.
1. 나 자신
2. 내 동생(혹은 언니)
3. 엄마
4. 외할머니
5. 우리 토끼
6. 아빠
7. 할아버지·할머니(친가)
그 리스트를 보며 나는 한껏 웃었지만, 남편은 입술 끝이 살짝 떨렸다.
토끼에게도 밀린 ‘6위’라니!
아이들은 왜 이런 순위를 매겼을까?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 왔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야.”
자존감을 1순위에 두게 한 내 목소리가 아이들의 마음에 단단히 뿌리내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형제(자매)를 2순위에 둔 것도,
“서로 같은 편이 되어 살아가라”는 내 당부를 고스란히 옮긴 결과일 터.
나는 아이들의 멘토로, 진로와 꿈을 함께 설계해 주는 ‘3위’ 자리에 안착했다.
그렇다면 아빠는 왜 토끼보다 뒤였을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자주 볼수록, 따뜻함을 자주 느낄수록 마음의 순위가 올라간다.”
평일엔 바쁜 업무 탓에 집에 늦게 들어오는 아빠보다,
매일 먹이를 주고 같이 뛰어놀던 토끼가 아이들에겐 더 친근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단순하고, 천진하며, 그래서 솔직하다.
그날의 순위표를 다시 떠올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6위였던 건 아이들이 당신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야.
그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야.”
주말이면 녹초가 되어서도 아이들과 수영하고,
밤이면 졸린 눈으로 동화책을 읽어 주는 그의 모습이
이제는 아이들 마음속에 얼마나 크게 자리 잡았을까?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훌쩍 자란다.
작은 손으로 순위를 적던 그 종이는 어느새 추억 상자 속에 깊숙이 묻혔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사랑의 순위는 언제든 변한다.
함께 웃는 시간, 손을 맞잡는 순간, 눈 맞추고 귀 기울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 순위를 조금씩, 하지만 분명히 올려 간다.
오늘의 작은 다짐
바쁜 하루라도 야러분은 은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
주말 하루, 휴대폰을 멀리 두고 ‘아빠 전용 시간’을 선물한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 주되,
부모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매일 새로 덧칠한다.
지금 이 순간, 내 순위가 몇 위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좋다.
아이들의 웃음 속에, 남편의 따스한 눈빛 속에,
그리고 내 가슴 한켠의 잔잔한 평화 속에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이미 선명히 기록되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