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감기로 몸살이 나, 침대와 한 몸이 된 듯한 시간을 보냈다. 정신은 흐리멍텅했고,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이상하게도 이런 상태에서 글을 쓰면 감정이 반쯤 마비된 듯한 상태가 된다. 마치 어딘가 멀리서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 같달까. 문장을 써놓고는 스스로 묻는다.
“내가 방금 무슨 의도를 표현하려 했더라?”
어제는 그런 흐릿한 정신 상태 속에서 중국에서 온 한 펀드매니저와 미팅을 가졌다. 어쩌면 그 만남 자체가 흐리멍텅의 연장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에게서 투자처의 단서, 즉 ‘쏘스’를 원했고, 내가 가진 네트워크 자원을 끌어오길 바라는 눈치였다. 에너지 자원 관련한 일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일본 영주권을 얻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곳 싱가포르에서의 삶을 되짚어보았다. 기반 없이 50세 이후에 영주권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쩌면 그녀는 나보다 더 절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한때 중국에서 잘 나가던 펀드매니저였다는 그녀, 듣자 하니 ‘훙얼다이(紅二代, 공산당 고위층 자녀)’의 후광도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싱가포르 금융계의 벽 앞에서 언어라는 장애물에 막혀 있다. 영어가 통하지 않으니 실력보다도 더 답답함이 앞서는 듯했다.
이야기는 어느새 일본의 지진과 재난 이야기로 이어졌고, 내가 걱정이 너무 많다는 그녀의 말에 잠시 웃음이 났다.
‘걱정 많은 사람이 걱정 많은 사람을 만났구나.’
그날의 나로서는 그녀의 말에도, 웃음에도 온전히 반응할 여력이 없었다. 머리는 흐렸고, 대화는 겉돌았으며, 마음은 자꾸만 집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몸과 마음이 정상이 아닐 때는 의미 없는 만남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나를 소모시키는 자리보다는,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래도 흐리멍텅한 하루는, 이렇게 한 편의 글로 남아 무언가로 바뀌어간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조금 나아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