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평등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균형이 가장 닿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부모라는 이름 아래의 사랑이다.
나는 세 자녀 중 가운데에 태어났다.
위로는 칭찬을 받는 언니, 아래로는 귀여움을 독차지한 남동생.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사랑을 기다리는 아이였다.
어쩌면 그때 나는 사랑받기 위해 공부했는지도 모른다.
칭찬을 받기 위해 더 얌전해졌고,
혼나지 않기 위해 더 먼저 사과했고,
잊히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떤 아이는 실수를 해도 품에 안겼고,
어떤 아이는 아무리 잘해도 문밖에 서 있었다.
편애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불공평한 눈빛, 차가운 말투,
그리고 침묵 속에 담긴 실망이 말해준다.
사랑받는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당연히 누리고,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을 점점 깎아낸다.
"넌 아직 아니야."
말은 없지만, 태도가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그런 아이는 더 착해지고, 더 참으며, 더 열심히 살아간다.
부모가 원하지 않아도, 스스로 더 힘든 길을 고른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는 부모가 알아줄 것이라는 작은 희망 하나만을 붙잡고.
하지만 사랑이 ‘투자’가 되는 순간,
그 감정은 이익과 손해로 재단되기 시작한다.
기대만큼 결과가 없으면,
자식도 실패한 투자가 되고 만다.
그 순간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 ‘성과’가 된다.
도구가 되고, 책임이 되고,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된다.
진짜 사랑은 “왜?”를 묻지 않는다.
그저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안아준다.
그러나 어떤 부모는 말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그 말은 사랑이 아니라, 계산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지만,
한 사람의 아이가 평생 기다리는 말은 단 하나다.
“너는 정말 잘하고 있어.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그 말을 듣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늘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감추다 결국
스스로를 잃고 만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못한 것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미숙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를 사랑해도 된다는 것을.
누군가의 자랑이 되기 전에,
나는 이미 나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내 아이만은,
사랑을 저울질하지 않겠다고.
나는 내 아이만큼은, 사랑을 동등하게,
오차 1% 미만의 정성으로 키우려 한다.
아이의 마음에 ‘비교’ 대신 ‘신뢰’를,
불안 대신 ‘확신’을 심어주고 싶다.
당신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