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천천히 건물 벽을 타고 내려올 즈음,
하루의 무게가 내 어깨 위에서 조금씩 풀린다.
해가 지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 안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중이다.
아침의 분주함과 낮의 성취가
저녁 앞에선 그저 고요한 그림자가 된다.
그림자 위에 내 마음을 앉히고,
오늘을 조용히 되짚어본다.
무엇을 이뤘는가보다,
무엇을 느꼈는가가 더 중요한 시간.
누구에게 잘 보였는가보다,
스스로에게 얼마나 진실했는가를 묻고 싶은 순간.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사람들은 여전히 앞을 향해 걷고 있지만,
저녁만은 다르다.
그 누구의 시간도 빌리지 않고,
그저 나의 호흡, 나의 속도로 흐른다.
저녁이 되면
내 안의 목소리들이 더 잘 들린다.
“괜찮아, 오늘도 충분했어.”
“모든 걸 다 알지 않아도 돼. 지금 여기 있으면 돼.”
그 말들이 따뜻한 물처럼 마음을 감싼다.
빛은 사라졌지만, 어둠은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스스로를 안아주는 언어의 등불이 있으니까.
저녁은 단지 하루의 끝이 아니라,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귀로(歸路)**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더 이상 누구도 흉내 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쉼을 배운다.
창가에 걸린 마지막 빛줄기마저 사라지면,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건 세상을 피하는 게 아니라,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되기 위한 준비다.
오늘이라는 장을 다 쓰고,
페이지를 넘길 시간.
다정하고 조용하게 말하자.
"잘 쉬어, 나."
"내일도 내게 기대해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