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큰아이와 마주 앉아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식탁 위에는
이미 식은 차가 놓여 있었고
아이의 손은 컵을 감싸 쥔 채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말을 꺼내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의 목소리는 낮았고
문장은 짧았다.
이미 끝난 일인데도
몸 어딘가에 남아
불쑥 튀어나오는 기억들에 대해.
설명하려 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말을 멈출 때마다
기다렸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제는
모든 말에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말에 덜 반응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문장이
공기처럼 스쳐 지나가고
그 뒤를 굳이 붙잡지 않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아이보다 먼저 흔들렸다.
한마디에 오래 머물며
뜻을 헤아리고, 의도를 추측하고,
혹시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밤늦게까지 생각했다.
생각은 생각을 낳았고
마음은 자주 과열되었다.
그건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늘 바깥을 향해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들어온 말들이
내 안에서
아이보다 먼저 자리를 잡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공기가 달라졌다.
말이 줄어들고
침묵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그 침묵이 낯설었지만
곧 알게 되었다.
침묵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공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 아침
아이 앞에서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위로하려 애쓰지 않았고
정답을 건네려 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말을 끝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말하지도
다 지나간 일이라고 정리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 더 가벼워졌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이해받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
누군가의 평가가 아니라
아이의 호흡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상태.
이제는 안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말은
말로 남겨두지 못할 때
비로소 무게가 된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다.
굳이 반응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스스로 굴러간다.
아이도 언젠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을 남겨두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지금은 다만
그 곁에
흔들리지 않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그마저 어려운 날에는
그 자리에 두고
지나온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
누군가의 부재가
고요를 남겼다면
그건 상실이 아니라
정리다.
나는 요즘
많이 말하지 않는다.
아이 앞에서도
설명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를 살고
그 하루를 다시
조용히 내 안에 놓아둔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자기 하루를
그렇게 놓아둘 수 있기를
가만히 바란다.
그것이면
지금의 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