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바다에서

언어는 소통이며 언어는 예술이다 .

by 지로 Giro


내가 한글을 배운 건 생애 초반부 10년이 전부였다. 그 이후, 한국어는 엄마와 통화할 때만 쓰는 언어가 되었다. 가끔은 어떤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머뭇거리기도 한다.

나의 언어 채널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아마 처음에는 이 순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산 시간이 25년 가까이 되고, 주변에 대만 친구들이 많다 보니, 내 중국어 억양은 점점 대만 타이베이 억양을 닮아갔다. 그래서 종종 대만 사람으로 오해받곤 한다. 상하이 방언도 알아듣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제는 그럴 기회도 드물다.

내 큰아이는 태어나서 두 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걱정이 되었는지, 세 번이나 병원에 데리고 갔다. 혹시 청각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고,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며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마치 병이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두 살 반이 되었을 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이는 아빠를 보면 영어로, 나한테는 중국어로, 외할머니에게는 한국어로 쫑알쫑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정말 놀라운 순간이었다.

우리 집에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셔서 늘 중국어로 대화했고, 시부모님은 아버지와 광동어로 이야기하셨다. 나는 엄마와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언어들이 오가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는 아마 엄청난 혼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어의 채널들이 연결되는 순간, 아이는 마치 마법처럼 여러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16살이 된 내 아이는 싱가포르 영어(Singlish)가 아닌,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중국어는 원어민 수준이다. 한국어는 조금 서툴지만, 6개월만 한국에 살면 금방 유창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년, 학교에 방문한 일본 학생 대표단의 통역을 큰아이가 맡았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놀라움을 느꼈다. 내 아이의 언어 여정은 마치 작은 우주가 나를 향해 별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삶의 리듬이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숨결, 말과 말 사이의 공기, 서로 다른 뿌리에서 꽃을 피운 소리들이었다.

우리 가족이 주고받은 수많은 단어들 속에는, 사랑과 이해, 그리고 끝없는 인내가 담겨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언어라는 바다에서 우리 가족은 각자의 나침반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비록 서로 다른 파도에 몸을 싣고 있지만, 그 바다는 결국 하나의 바다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여전히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아이의 속삭임을 들으며, 나를 이어주는 말의 다리 위를 걷는다.

우리의 언어는, 잊히지 않는 물결로 내 안에 남아있다.내 아이 한테도 자랑스러운 우리말 한국어 대 물림을 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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