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집에 다녀오다가 홍대 입구에서 우연히 사촌 동생을 만났다. 나는 공항 철도에서 2호선으로, 사촌 동생은 공항 철도를 갈아타러 걸어가는 중이었다. 군복을 입은 아이가 누나! 하며 가던 길을 돌아와 내 팔을 살짝 잡았고 나는 영문을 모르고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너무나도 밝게 빛나는 그 어린아이가 날 보며 반갑게 활짝 웃는데 마음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겠는 사랑이 샘솟아 올랐다.
세민이는 이모의 둘째 아들이다. 이모가 미국에서 돌아온 후, 우리 가족과 이모네 가족은 늘 같은 동네에 살았다. 처음에는 이모가 우리 동네에 이사를 와 살았고, 그다음에는 우리가 이모네 동네에 이사를 가서 살았다. 내 첫 아르바이트는 이모의 영어 학원이었고, 이모가 음식점을 할 때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가 일을 돕고 먹을거리 몇 개를 싸가지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얼굴을 보기만 해도 밝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모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어떤 이야기들은 엄마보다도 이모와 더 잘 통했다. 나는 새로운 나라에 가면 심카드를 사자마자 길거리에서 이모에게 인터넷 전화를 걸어 내가 있는 곳에 대해 속속들이 이야기해주곤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거의 매일 이모를 만났던 때도 있었다(그때 이모는 또 얼마나 오래 못 보려고 우리 이렇게 매일같이 만날까!라고 말했다). 이모는 나를 만날 때마다 어리고 생명력 넘치는 나를 사랑이 샘솟는 눈으로 바라봐 주었다.
내가 외국을 거지꼴로 떠돌며 한국에 거의 2년째 들어가지 못했던 때 세상에서 제일 예쁜 그녀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그 사실을 며칠 뒤에나 알아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이모를 생각했지만 차마 눈물을 흘릴 수도 없다가 이모가 떠난 지 일 년도 넘었던 어느 날, 파리의 한 사진가 친구의 집에서 그 친구가 본인의 할머니가 투병하실 때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통곡했다. 거긴 병색이 완연한, 빼빼 마른 사람이 있었다. 내가 몰랐던 아마 이모의 마지막 시절 모습과 닮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너무 사랑하던 사람의 어떤 시절의 모습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고 애써 외면하다 떠나보낸 것이다.
이모는 세상을 겁도 없이 떠돌던 내게, 이모는 네가 이모보다 훨씬 어리지만 너를 존경한다는 말까지 해주었었다. 나는 외국에서 이모에게 우리는 너무 닮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있었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도, 열정도, 욕심도 많은 우리는 너무 닮았다고. 이모는 그 편지를 몇 번이고 계속 꺼내보았다고 했다.
세민이를 몇 달 만에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찰나에 나도 모르게 샘솟는 어찌할 바 모르겠는 사랑을 느끼며, 그리고 그 아이의 밝은 생명력을 느끼며 나는 이모가 나를 볼 때의 마음을 떠올렸다. 이모도 나를 볼 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 마음은 여전히 여기에 살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