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만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연락이 닿아야 한다. 기적적으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겠으나 대개의 경우 누군가는 먼저 전화기를 들고 인사를 건네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 없이 쉽게 말을 꺼낼 수 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은 먼저 연락하기를 망설이다 끝내 포기한다. 들어보면 이유도 다양하다. 어색해서, 막상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상대가 시간이 언제 될지 몰라서, 너무 오랜만이라, 혼자만 서운해질까 봐…. 원래 먼저 연락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만남을 원하지 않는데 연락이 꼭 오고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 지내는 것이 좋은 사람도 있고 밖에 나가기 어려운 남모를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사이에 자주 오해가 생겨나기도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대로부터 연락이 없을 때 '이 사람에게는 내가 별 의미 없는 사람이구나'하고 마음을 거두어들이려 한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거두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 아쉽고 서운하면서도 상처받기 싫은 복잡다단한 기분들이 섞인 채 그렇게 그들은 멀어져 간다.
나에게도 어쩌다 보니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그들과 함께 나눈 시간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그 시간을 떠올리는 순간이면 내 삶의 시간 속에 그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된다.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대화와 웃음, 함께 먹었던 것, 마주 보고 마셨던 커피, 그날의 햇살 같은 것이 기억 속에서 떠오르고 그 순간만큼은 아직도 그들이 내 안에 살아있다고 느낀다. 새삼 그들이 내게 내어 주었던 그 마음이 참 드물고 귀한 것이었다는 것을 실감하며 언제 어디에 있건 그들이 행복하기를 조용히 바래본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한다. 생물학적 죽음이 첫 번째라면 그를 기억하는 이가 세상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때 최종의 죽음을 맞이한다. 첫 번째 죽음이란 같은 인간으로서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아무리 괴로워해도, 하늘에 대고 외쳐 봐도, 다른 세상으로 떠난 이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라 쉽게 말하지만 가까운 사람, 사랑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 사실은 현실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죽음을 추상적 개념으로 이해하기란 간단한 일일 수 있지만 그것을 살아있는 것, 삶의 일부로서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삶은 함께 뒤흔들린다. 삶의 실감이 흐려진다. 다시는 그의 손을 만질 수도, 함께 걸을 수도, 그를 향해 말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첫 번째 죽음이 불가피의 것이라면, 두 번째 죽음에는 기억하는 자, ‘나’가 등장한다. 나는 그를 다시 불러올 수는 없지만, 내가 그를 기억하는 한, 그와의 기억을 내 삶에서 망각하지 않는 한, 그는 살아있는 것이다! 그때 그는 세상에서 죽었지만 그렇다고 사라진 것은 아님이 된다. 그리고 그 살아있음에 나의 살아있음이 연동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눈앞의 세계는 아까의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는 내 삶을 통해 다시 살아가고 있다.
기억을 통해 사랑하는 이들을 되살리는 것도 이렇게 기쁜데, 그들의 얼굴을 두 눈으로 보고 그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실제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삶이 상호적으로 존재할 때, 나의 존재가 그의 존재에 기대고 있으며 그의 존재가 나의 존재에 기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불완전해도 좋다. 내 존재의 불완전함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진다.
나도 그도 함께 삶의 날들을 더하고 있으며 평범하고도 특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 이 사실을 서로 마주한 채 확인하는 찰나는 그의 살아있음뿐만 아니라 나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간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그중 오직 몇 뿐, 마음을 나누게 되는 사람은 그보다도 훨씬 적을 것이다. 삶의 시점에 따라 마음의 상태도 날씨처럼 변화하고 내가 비로소 마음을 낼 수 있을만한 상태가 되었지만 서로 인생의 시기가 맞지 않아 결국 흩어지게 되기도 한다.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배 하나처럼 때로는 빗속에서 때로는 햇볕 아래서 우리 각자의 삶은 표류하기도 하고 떠내려갈 때도 있다.
떨어진 채 각자의 트랙을 달리던 두 존재가 비로소 마주하는 우리의 만남에는 단지 인간적 노력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우연과 인연들이 신비롭게 작동한다. 오로지 의지와 노력의 문제라고 단정하기에 삶은 훨씬 더 커다랗고 귀한 것, 그러므로 만난다는 것은 차라리 작은 기적에 가까울지 모른다.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눈 녹듯 사라진다 해도.
후기:
몇해 전 이 즈음, 손주들을 아껴 주셨던 외할머니, 그리고 저희 가족이 십칠 년을 키웠던 강아지와 이별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과 이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text by 엘렌의 가을
image thanks to Annie Spr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