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같은 며느리 비하인드
딸 같은 며느리가 되거라
처음 시아버지가 이 말을 나에게 했을 땐 나도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감사했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종종 딸 같은 며느리 갖는 게 소원이라 하실 때도
찌잉- 감동과 함께 더 예쁨 받기 위해 노력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기.묘.했다.
식탁에 음식이 차려질 무렵 어머니는 아직 자고 있던 시누이를 불렀다.
- ㅇㅇ야, 밥 먹어
대답이 없다.
결국 시어머니는 시누이 방에 들어가서 깨우기 시작했다.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안 먹는다니까! 더 잘 거야! 깨우지 마!
그날 나는 '피곤한 애' 더 잘 수 있게 설거지를 최대한 조용히 해야 했고
막 걸음마를 뗀 아이는 '고모 코 자니까 조용히 하자~' 하면서 조용히 시켜야 했다.
나중에 저녁을 같이 먹고 시누이가 빈 그릇을 치우려고 일어서길래
- 제가 할 테니 반찬통만 좀 정리해주세요.
라고 했더니 옆에서 시어머니가
- 이이?! 어디서 뭘 정리하래?!
라며 내가 내밀던 그릇을 탁 뺏어 싱크대에 던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 분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딸같은 며느리를 강조할때 사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에 부흥하기 위해
나는 시외할머니와 시외사촌의 무리한 요구도 다 들어주며 살갑게 대했고
갑자기 집에 오거나 방문을 벌컥 열며 들어와도 불편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나에게 막(?) 말을 해도 가족이니까, 딸 같으니까, 하고 이해하려던 것들이 와장창 무너졌다.
인터넷에 '딸 같은'이라고 치자 딸 같은 며느리 관련 글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 글들을 읽고 나니 시댁에서 원하는 딸 같은 며느리는 무엇인지 더 혼란이 왔다.
많은 며느리들이 그 말에 화병이 나고 결혼을 앞둔 예비 며느리들은 스스로 딸 같은 며느리를 자처하고 있었다. 답답하고 짠했다.
그래서 그렸다.
뭔가를 계몽하려고 한것도 아니고 뭔가를 바꾸려는 생각도 없었다.
특정 누군가를 비판/비난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아주 잠시 씩 웃으며 답답증이 약간 내려가길 바라며 그렸다.
딸같은 며느리? 정 소원이라 하시니는 분명히 내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있었던 일도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나보다.
글을 올린 어제, 이만 명 가까운 조회수와 공감 댓글이 달렸다.
실제로 가능하진 않으나 시원하다 고맙다 힘난다라는 댓글들이 내 어떤 글보다 많이 달렸다.
그리고 드문드문 악플이 달렸다
그 악플들을 읽고 생각에 빠져 어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남편은 혹시 악플때문에 상심했을까 봐 날 걱정했다.
무엇이 그들을 불편하게 했을까?
남편의 설명에는 '여혐'이니 하는 자극적인 단어들이 가득이었다.
브런치 수준까지 논하는 악플을 보면서 브런치에 넘쳐나는 주변 비판이나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놓는 에세이들 속 나의 글은 대체 어떻게 브런치 수준을 낮추는 글이 되는지.
임신 웹툰을 올릴 땐 남들 다 하는 거 유세 떤다는 악플이
내가 일하고 남편이 육아하는 웹툰엔 남자 기죽이고 유세 떤다는 악플이
내가 육아하고 남편이 일하는 웹툰엔 놀고 먹는 주제에 유세 떤다는 악플이 달렸다
결국 나는 몇년 전 웹툰을 올리던 블로그와 베도 계정을 모두 삭제해 버렸다.
- 모든 사람 입맛에 맞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아.
다 타깃이 있고 거기에 맞추는 거지, 모든 층을 타깃으로 했다가는 산으로 가.
네 그림을 좋아해주고 공감하는 사람들만 생각해.
댓글 기능을 없애야 하나 고민도 했다.
하지만 댓글의 순기능이 더 크다.
꾸역꾸역 그림을 그리는 힘이 되고 양분이 된다. 도움이 되는 비판도 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계속해서 의견 반영을 해 수정한다.
예전엔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악플을 바로바로 지운다.
악플 다는 사람들은 불편한 글이야 읽지 않으면 되지만 나는 악플을 읽어야만 한다.
읽었고 잘 알았으니 지우면 되는 것이다.
며칠전 아래 @노이님의 글을 읽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는데 바로 실천할 일이 생길줄이야.
https://brunch.co.kr/@noey/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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