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지: 안경과장 05
다문화라는 말에 갑자기 의기양양해지는 안경과장.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표정에서 쉽게 드러났다.
"아~ 다문화? 거 봐요.
그런 동네는 학군이 좋아질 수가 없어요.
그런 동네는 공부를 아무도 안 할 텐데."
안경과장이 생각하는 그 '다문화'는 대체 무엇일까.
뭘 '거 봐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영국과 나는 요즘 프랑스, 캐나다, 스페인, 미국, 네팔 순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동네에 많다는 이야기를 이어 했다.
멍하니 듣고 있던 안경과장이 안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어? 아닌데? 그 동네가 그럴리가 없는데.. 그새 동네 분위기가 변했나?"
처음 다문화라고 했을 땐 '거, 봐라' 라고 외치더니 이번에는 '그럴리가 없다'란다.
안경과장이 생각한 다문화는 과연 무엇일까.
안경과장의 반응을 지켜보며 얼마 전 8살 아이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이가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오늘 학교에서 영상을 봤는데 기분이 나빴어."
"왜?"
"다문화 그런 거였는데 뭔지 몰라서 '다문화가 뭐에요?' 하고 물어보니까 선생님이 '응, 외국인~'이랬는데 나도 외국인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기분 나빴어."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중국적자이다.
"나도 다문화인거잖아 그런데 막 친구들이 놀리는 걸 선생님이 보여줬다니까?"
너무 놀라 잠시 할말을 잃었다.
선생님이 다문화 가정을 외국인이라고 한 것.
그리고 '다문화'에 대해 오늘 막 배운 아이가 자신이 '다문화'인 것에 속상해 했다는 것.
놀란 마음을 감추고 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그런데 다문화면 왜 싫어?"
"영상에서 애들이 다문화 애를 막 놀렸단 말이야. 친구들이 보고 나도 놀리면 어떡해!"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만든 교육 영상이고 친구를 놀리는 것은 나쁘다는 것도 배울 것이다.
하지만 가치판단 없이 그냥 같은 반 친구로 받아 들이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다문화'는 뭔가 안 좋은 것, 친구들에게 놀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자신이 '다문화'라고 생각한 아이는 그 영상을 보면서 꽤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영상 속 말들을 배워서 자기에게 할까봐 내내 걱정했다고 했다.
그날 우리 부부는 아이를 앉혀놓고 이해시키려 했지만 생각보다 명쾌한 설명이 어려웠다.
그냥 같은 반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던 친구를 사실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고 따로 부른단다라는 것부터 설명해야하는 것이다.
아이가 그 친구들을 설명할 때는 항상 '까부는 서영이', '축구 좋아하는 준희'였지 외국인이라느니 다문화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내가 누군지 헷갈려하면 답답해 하며
"서영이 몰라? 저번에 놀이터에서 만났잖아. 머리 엄청 길고 꼬불꼬불한 애. 우리반에서 키 제일 큰 현우랑 싸워도 이기는 애야."
이런 식이었다.
다문화도, 외국인도, 피부색도 없었다.
이제는 오히려 그 친구들을 보면 외국인, 다문화라는 딱지를 자기도 모르게 붙일까 오히려 걱정이다.
딱지가 붙는 순간 '보통' 혹은 '평범'과는 나뉘게 된다.
그리고 나뉘어 묶이는 순간 '너'와 '나'는 다름이 되고 차별이 시작된다.
그 교육 영상에서 다문화 가정으로 나온 아이의 피부색은 무엇일지 상상도 하기 싫다.
혹시나 싶어 찾아본 다문화 가정 교육 영상들에서는 죄다 아이들의 피부색이 한결 같았다.
아무 선입견이 없는 아이들에게 특정 피부색=다문화=놀림거리 공식이 무의식중에 심어질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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