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가 본 세계의 미술관
10년 전 코펜하겐 SP34 호텔에서 조식을 먹었을 때 반했던 작은 유리 캐니스터에 담겨 나오는 신선한 과일과 요거트가 있을 것 같은 조식 레스토랑으로 갔다. 직원이 아이들을 위해 핫초코나 주스를 원하는지 물어봤다. 혈당스파이크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렇게 추운 나라에서 아침에 핫초코를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핫초코를 주문해 주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하늘은 초저녁처럼 어두웠다. 아침 8시 정도였는데 밤 같았다. 그래도 커피와 크루아상, 과일과 채소들은 쨍하게 맛있었다.
지난번 코펜하겐 여행 때 날씨를 만끽하며 남편과 둘이 다녀왔었던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 먼 길을 지겨워하는 아이들과 과연 그곳을 가야 할까 라는 고민을 아침 내내 했었다. 버스와 기차를 타고 꽤나 멀리 가야 하는 곳이었고 날씨까지 썩 내키지 않아 고민 고민 하다가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가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호텔 조식 후 루이지애나미술관으로 길을 나섰다.
그때도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1시간은 족히 걸렸었던 것 같은데 비바람까지 부니 더 멀게 느껴졌다. 버스에 사람도 별로 없었고 기사 아저씨의 터프한 운전덕(?)에 가는 길이 더 험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가는 중간중간에도 “그냥 마지막 날이니 시내 구경이나 하며 시간을 보낼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루이지애나 미술관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다. 왠지 모르게 비가 조금씩 그치고 해가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루이지애나미술관 입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루브르나 오르세 같은 고풍스러운 느낌의 건물이 아니라 일반 북유럽 주택에 오랜 시간 동안 벽을 타고 자라난 넝쿨들과 장난스러운 웰컴 텍스트가 우리를 또한 번 맞이해 주었다. 오픈시간이 거의 다 되지 다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미술관 입구가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이들과 함께 온 우리를 어떤 사람이 보고는 메인 출입구 옆쪽에 있는 또 다른 입구로 비를 피하고 들어오라고 안내해 주었다.
아이들은 미술관이라는 것에 신기해했다. 보통의 미술관과는 다른 느낌에 그랬을 것이다. 총 3동으로 이루어진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1-2년 사이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3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려 지어진 미술관이다. 개인 소장품을 관리하기 위해서 지어진 미술관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미술관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이라고 해서 왠지 미국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 건물의 최초의 소유주였던 알렉산드르 부룬이라는 사람이 세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모두 이름이 공교롭게도 루이지였다고 한다. 미술관 이름은 세명의 아내 이름에서 왔다고 한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소장품들을 보는 재미도 좋지만 중정을 바라보며 걷는 건물과 건물을 잇는 해가 가득한 복도를 걷는 것이 최고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두 번째 방문에서도 느꼈지만 조용히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 자체가 내가 만들어 내는 작품인 것 같았다. 너무 추운 겨울이라 바다가 보이는 언덕은 나가보지 못하고 내부에서 많은 것을 즐겼다.
아이들도 안락함과 차분함이 느껴지는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양한 그림과 조각을 보며 이야기도 하며 사진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편과 둘이 왔을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었던 아이들을 위한 미술공간에도 가보았다. 건축과 미술에 관련된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고 있었고 진행 중인 클래스도 있었다. 아이들은 종이와 색연필이 있는 책상 하나에 자리를 잡고 그림도 그려보았다. 루이지애나미술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이 그려보다니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정말 날씨 탓에 시간 탓에 오지 않았다면 많은 후회를 할 뻔했었다.
오전에 미술관을 돌아보고 기념품샵에 들렀다. 우리에게 빠질 수 없는 포스터 쇼핑도 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기념폼도 하나씩 사주었다. 배가 고파와 우리는 미술관 레스토랑에 갔다. 간단히 먹고 싶은 우리 마음만큼 메뉴들이 참 라이트했다. 아이들은 당근과 오이, 그리고 견과류와 요구르트, 호밀빵 한 조각으로 구성된 키즈메뉴를, 우리는 샐러드와 오픈 샌드위치 그리고 맥주와 물을 주문했다. 사람이 많아서 바다를 바로 바라볼 수 있는 창가 좌석에는 앉을 수 없었지만 레스토랑이 스킵플로어 형식으로 되어있어 어느 자리에서든 뷰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하늘이 조금은 맑아져 호안미로의 조각과 푸른 잔디, 멀리나마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맛있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식사 후 바람이 조금 잦아들어 미술관 외부로 나가보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우리는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무지개가 있는 루이지애나를 즐겼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말 오기 잘했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루이지애나를 떠났다.
루이지애나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코펜하겐 중앙역 쪽으로 왔다. 2층 기차를 타고 가면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게임을 하며 시간을 금방 보낸 듯했다. 이제 오늘 밖에 즐길 수 없는 코펜하겐 중앙역에 내려 언제 또 보려나 하는 마음으로 시내를 둘러보았다.
한 번은 꼭 숙박해보고 싶었던 SAS 호텔 빌딩도 아쉬운 마음에 한번 더 보고 코펜 하게 중앙광장도 한번 더 둘러보았다. 뷔페로 유명한 달레발레 식당이 있는 라운드타워, 티볼리 놀이공원 입구도 다시 둘러보았다. 조금 더 걸어 코펜하겐 시내 레고 매장에도 들러 아이들의 눈을 충족시켜 주었다. 레고 매장이 있는 시내 중심가에는 일룸스볼리 후 스 매장과 로열코펜하겐 매장도 있어 어른들도 즐거운 곳이다. 레고매장을 한번 더 둘러보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걸어 모두가 피곤했지만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움직인 하루였다. 오틸리아 호텔 근처는 빌리지이긴 하지만 식당이나 슈퍼들이 많은 곳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을 룸서비스를 시켜 먹기로 했다. 이그제큐티브 룸이라 맥주와 음료가 무제한 무료였다. 피자와 샐러드 그리고 치킨을 시켜 아이들과 맛있게 먹으며 우리의 이번 북유럽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2주 동안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게 모두가 함께 잘 다닌 것 같다고 서로 칭찬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중세 공주가 잠을 잤을 것 같은 4미터 이상은 되어 보이는 높은 아치형 천장 아래 침대에서 깊은 잠으로 여행의 마지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