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 홈오브칼스버그
오전 일정을 끝내고 호텔을 이동하는 날이었다. 어딜 가든지 숙소에 진심인 한 사람으로서 이번 여행은 아이들과 함께 가는 유럽여행이었기에 숙소에 더 공을 들였다.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가진 호텔이면 좋을 것 같았고 건축이나 디자인 볼거리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2014년 코펜하겐에 갔을 때 묵었던 숙소 중 Hotel SP34라는 부티크 호텔이 있었다. 덴마크 가구 특유의 목재 감성과 아늑함이 괜찮았던 호텔이어서 오래도록 기억과 감흥이 많았던 호텔이었다. 이번 여행 숙소를 찾다가 SP34 Hotel도 또 찾아보게 되었는데 코펜하겐 여러 지역에 오래된 호텔들을 리모델링해서 재오픈하는 체인으로 성장해 있었다.(예전부터 큰 체인이었는데 내가 몰랐을 수도 있다.) 그중 하나가 호텔 오틸리아였다. SP34 Hotel과 바로 옆 건물에 SP43 Apartment라는 레지던스도 오픈했었는데 그곳은 아동을 포함한 3인까지 투숙이 가능했었다. 아동이 2인이 4인 가족인데도 투숙이 불가능하냐고 묻는 메일로 친히 보내보았지만 거절당했다.
오틸리아 호텔은 홈오브칼스버그 전체를 리모델링하면서 새로 생긴 호텔이다. 원래는 맥주를 생산하는 공장과 창고로 쓰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호텔로 만들었다. 3박 4일 머무는 비용이 저렴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을 만족하는 정말 후회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2014년도 9월에 칼스버그 맥주공장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에 남편과 둘이 왔었다. 그 당시에는 빌리지라는 느낌보다 오래된 시골 공장터라는 느낌이 강했고 맥주 공장과 박물관도 노후되어 옛 정취가 많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주변이 한창 공사 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문에 묵직하게 칼스버그를 지키는 코끼리는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2023년에는 홈오브 칼스버그라는 이름에 걸맞게 깔끔하게 변모된 옛 건물들과 다양한 가구와 소품샵들, 주거지로 변해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레지던스들도 있어서 칼스버그 빌리지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칼스버그 맥주 사무실도 함께 자리 잡고 있어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칼스버그 맥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박물관 입장도 맥주 한잔과 스콜을 외치는 흥분되는 입장 방식으로 바뀌었고 전시물이나 내용도 인터렉션 아트와 미디어로 변모해서 칼스버그 맥주의 역사를 더 흥미롭게 전달해 주고 있었다.
맥주생산 설비 시설과 창고로 쓰이던 터라 층고가 높고 콘크리트와 쇠로 투박하게 지어졌던 건물 구석구석에는 예전의 흔적은 적당히 남기면서 공간을 새로 탄생시켜 놓았다. 객실이나 로비로 통하는 계단은 대부분 금속을 이용해 동선을 만들어냈고 높은 층고를 이용한 크고 멋진 조명들로 호텔의 아늑함을 살려내고 있었다. BAR 나 휴식을 위한 로비 공간에는 콘크리트의 차가움을 흡수하는 디자인 가구들이 안락함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전구색 조명들은 차갑고 추운 코펜하겐의 날씨를 몰라보게 따뜻하게 해 주었다. 큼직하고 투박한 철골 구조물들은 내부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 같은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부분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 벽에는 타이포와 플랜테리어를 이용해서 차가운 공간에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오틸리아 호텔 내부의 공간은 억지스러울 것이 없었다. 현대적으로 재탄생한 공간들은 아치형 창문, 빛이 통하는 썬큰, 100년은 되어 보이는 듯한 벽돌의 흔적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세련된 공간의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무너뜨리고 다시 짓는 것이 아닌 브랜드 역사의 흔적을 남기면서 현대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덴마크 사람들의 능력과 감각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