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느끼는 사랑의 기준
명품 브랜드에서 일하던 후배와의 와인 한 잔이
예상치 못한 인간 관찰기의 시작이었다.
몇몇 지인들과 함께 나눈 그날의 대화는 밀주보다 더 걸죽한 스캔들로 가득했고,
우리의 도파민을 팡팡 터뜨렸다.
"언니, '사귀고 있는 남자들'에게서 현금 타는 방법이 있어요."
"남자…들? 게다가 현금?"
귀가 쫑긋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매장에 남자분이 와서 여자분한테 가방을 사주시는데, 꼭 현금으로 결제해요.
카드 내역이 남으면 안 되는 분들이니까요.
그런데 그 여자분이 다음 날 다른 남성분과 또 오시는 거예요!"
"응? 다른 남자랑? 브랜드 마니아인가?"
"그리고는 똑같은 가방을 또 사요. 역시 남자분이 현금으로 결제하고요."
"왜 똑같은 걸?"
우리는 모두 '기왕 살 거면 다양하게 살 텐데' 하며 의아해했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 교환권과 함께 가방 하나를 들고 와서 현금 환불을 요구하시는 거예요."
"왜?"
아직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우리였다.
"정말 포장해 드린 그대로, 고스란히 가져오셔서 현금받고 사라지세요.
처음 산 가방은 어깨에 메고 들어오시면서요."
그제야 그녀의 정교한 전략이 보였다.
"아, 두 남자를 만날 때 같은 가방을 메고 나가서 '오빠가 사준 가방이 너무 예뻐서 매일 이것만 들어'라고 하는 거구나."
"안 창피할까요?"
"창피하기는요, 아주 프로들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그분이 오시면 산 아이템 중 하나는 당연히 반품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 신박한 방법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플라잉 걸'들이 많구나.
물론 이런 수법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첫째, 남성이 유부남일 확률이 높다. 현금 결제를 고집하니까.
둘째, 동시에 만나는 사람이 둘이어야 한다. 하나를 현금으로 환불해야 하니까.
아주 독특한 친구가 있었다.
집안도 부유하고 머리도 똑똑한 그녀의 마인드는 'Sex and the City'의 사만다 그 자체였다.
운동 종목별 선수들의 연애 스킬부터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선물을 받았는지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상세하고 생생했다.
"좀 비싼 걸 사주면 만날 때마다 자기가 사준 걸 하고 나왔는지 엄청 살펴봐."
"왜?"
"생색내는 거지. 내가 이런 걸 사줬으니까 나도 원하는 스킨십은 해달라는 메시지 아니겠어?"
"그런 거야?"
"생각해 봐. 남자가 여자한테 반지 사주고, 가방 사주고, 옷 사주고, 좋은 해외 리조트까지 데려가는데, 스킨십은 전혀 안 해주면서 말로만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다가 헤어지면? 먹튀라고 생각하는 거야."
묘하게 설득력 있는 논리였다.
"남자만 이런 생각하는 줄 알아? 여자들도 실컷 잘 사귀다가 제대로 된 선물 하나 못 받고 헤어지면 '너 나랑 자려고만 만났냐, 나를 우습게 본 거냐' 이러잖아."
여자가 남자에게 받은 선물의 가치로 사랑의 크기를 가늠한다면, 남자는 여자의 육체적 애정표현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걸까?
아마도 그럴지 모른다.
어떤 회장님은 자신이 여자에게 돈을 쓰지 않았는데도 많이 안아주었다며 진정한 사랑을 받았다고 자랑했고,
그 말을 들은 다른 대표님은 외제차를 사줬는데도 뽀뽀 한 번 안 해주고 헤어졌다며 당했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성 감수성 부족 발언이지만, 20년 전 술자리에서는 나이 든 '갑'들의 이런 꼴값이 왕왕 있었다.)
명품백을 사달라고 집요하게 조르지도 않았고,
명품백을 사주지도 않았으니 스킨십을 조르지도 않는,
우리 부부, 사랑을 하기는 했나 모르겠다.
- 사족 -
사만다 같은 내 친구는 순수한 남편감을 구하겠다면서 아프리카 봉사단체에 가입하였다.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며 천사 같은 캐나다 교포 의사를 만나
세상 얌전한 현모양처 코스프레를 하며 캐나다에서 아주 해피하게 잘 살고 있다.
진정한 플라잉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