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16)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하테노 마을엔, 정말 다양한 이들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귀여운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디론가 늘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즐거워하며 호기심도 많다.
길을 지나다 어떤 여자아이가 오빠라고 부르며 애교를 보이기에 왜 부르냐고 물었다.
그 여자아이는 내게 이거 아냐고 묻더니 갑자기 율동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앗. 이... 동작은?!
볼슨 사장님이 보여주었던 춤과 그 마무리 동작... 볼슨 사장이 말하길, 그 춤이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하길래, 그냥 하는 소린 줄 알았는데... 적어도 헛소문은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봐도 어처구니없는 춤이긴 하지만 (쿡쿡)... 그러나 볼슨 사장보다 이 여자아이가 춤을 더 잘 추는 건 분명했다.
동작이 모두 끝나고 아이는 나에게 기대어린 눈빛을 쏘면서, '이 춤 아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알아!' 하고 대답했다. 아이는 싱겁다는 듯이 아하하 웃으며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런데 근처 나무 아래에 앉아 개구진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시는 한 할머니가 계시기에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행을 하는 중인가 보군요... 저는 우메라고 합니다. 하테노 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살았지요.."
우메 할머니는 아주 느릿느릿, 그러나 또박또박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사셨다고요?"
"네... 요즘은 평화가 찾아온 건지 이 마을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지요."
"... 평화요?"
"그럼요.. 예전에 비한다면요... 하테노 마을엔 여러 경작지가 있어 작물도 어느 정도 일궈 수확을 낼 수 있지요.. 내가 어렸을 적엔 이 일대가 전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할머니는 그 말을 하며 나를 바라보던 눈길을 옮겨 어딘가 먼 곳을 보았다. 옛일을 추억하는 것일까...
"저 멀리 하이랄 성은 시내까지 붕괴돼서 거기 살던 모든 사람들이 희생되었다지를 않나... 우리 마을 사람들 중에도 성에 일하러 갔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들었지요... 그런데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대요..."
할머니는 대재앙을 직접 겪지는 않으셨다고 했지만... 할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주변 어른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일을 대재앙이라고 부르는데,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지요... 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만 전해 들었어도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담하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할머니는 거기까지만 이야기시고는 하늘을 바라보셨다. 할머니의 무거운 목소리에, 나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저의 힘든 어린 시절보다 삶이 나아져서 정말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하이랄의 아이들에게는 평화만 있기를...."
할머니는 조용히 두 손을 모으셨다.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할머니의 마음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함께 손을 모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보니 다른 꼬마아이가 산 쪽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뭔가 속상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뭐 때문에 그러는지 궁금해서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꼬마는 다짜고자, "내가 진짜로 봤어!" 하고 소리쳤다.
"응...?"
아이는 내 생각보다 화가 더 많이 난 모양이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다니. 그러나 내가 아이를 계속 쳐다보자, 아이는 씩씩대다 갑자기 멈추고 나를 보았다.
"....아! 그.. 그게... 죄송합니다."
아이가 사과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부드럽게 뭘 봤길래 그러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아이는 동그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자신있게 말했다.
"하테노 고대 연구소에 여자애가 있어!"
어리둥절했다. 고대 연구소에 여자아이가 있네 없네 말이 많네... 마을 안에서 이야기하던 아주머니들도 그렇고... 아주머니 말로는 자기네 애가 여자애를 봤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이 아이가 그 아주머니의 아들인가...? 아이는 다시 억울하다는 듯, 투덜대기 시작했다.
"저기서 여자애가 나오는 거 봤다니까! 어른들한테 얘기했는데 안 믿어 줘... 진짜로 여자애 있었는데!"
여자애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 같았지만, 아이는 어른들에게 인정받지 못해 화가 나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음... 그래. 네 말이 맞을거야. 여자애를 봤다면 있는 거겠지. 근데, 하테노 고대 연구소에는 누가 살아?"
"하테노 고대 연구소에는... 시커족 사람들이 살아. 근데, 근데! 얼마전부터 여자애가 나타났단 말야! 마을 아이들이랑 하테노 연구소까지 달리기 경주를 하는데, 올라갔다가 연구소 창문 안을 봤거든.. 근데 연구소 안에 분명히 여자아이가 있었단 말이야!"
아이는 이제는 불만이 꽤 쌓였는지 투덜대다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기에는 옛날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밖에 안 산대..."
"그래?"
"... 응... 시커족 여자애가 마을로 들어온 흔적이 없다고...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아...."
하일리아인들이 모여 사는 하테노 마을에 시커족들도 사는구나... 시커족이라.... 시커족이라면, 그 고대 기술을 잘 알았다던 사람들 아닌가? 하이랄 왕이 시커족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던 것이 다시 생각났다. 기술 활용에 뛰어나고 예지 능력도 있다는....
시커족들은 대재앙에서 모두 사라진 건 아닌가보네....그래서 고대 연구소가 있는 건가?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머리를 굴리는 동안, 꼬마아이는 더 할 말은 없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나를 스쳐 지나 터덜터덜 마을길을 내려갔다. 꼬마의 말이 맞건 아니건, 하테노 고대 연구소에는 한번 가 보긴 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도끼를 찾아야 하는데... 도끼가 어디 있나... 혹시 어디 구석에 떨어져 있나 싶어서 여기 저기를 둘러보는데, 간이 마방간처럼 생긴 곳에 당나귀가 풀을 뜯어 먹고 있고, 그 앞 기둥에 왠 남자가 궁시렁거리며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남자 뒤에 있는 당나귀에는 짐이 많이 실려 있었다. 혹시, 이 남자 상인인가 싶어 말을 걸어보려 했다. 그런데 서로 눈이 마주치자 오히려 그 남자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여행 중인가? 톤푸 여관에서 묵어 봤나?"
퉁명스러운 말투에 뭐냐 싶었지만, 일단은 대답을 했다....톤푸 여관? 어디지? 뭐 아직 가 보진 않았지만....
"아니요."
양 눈썹이 아주 짙어 고집스러워 보이는 그 남자는, 내가 여관에 안 갔다고 하자 적잖이 놀랐다.
"... 여관을 이용하지 않는다니.. 설마... 이 하테노 마을에 눌러붙을 생각은 아니지?"
... 눌러붙건 말건 무슨 상관일까. 하지만 잘 모르는 이에게 감정을 함부로 드러낼 수는 없는 법. 이 사람에게 집을 샀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놀려 줄까? 어떻게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글쎄, 어떻게 할까...' 라고 말했더니 그 남자는 인상을 구기며 더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 그건 받아들일 수 없겠는데... 왜냐하면 사랑의 라이벌이 늘어...."
뭐? 사랑의 라이벌...? 무슨 소리지 싶어 조금 놀라는데, 그는 말실수였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그는 매니라는 이름의 사내였다. 매니의 말에 따르면 하테노 마을은 그래도 안전하지만, 바깥 세상은 뒤숭숭하고 위험하다면서 .. 이런 때일수록 마을의 평화를 잘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이 (나 같은) 외부자가 침입하지 않도록 경비를 서고 있다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있을수록 매니가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톤푸 여관의 프리마씨에게는 연하남의 매력을 발산하지 말라는 둥... 프리마씨는 뭘 좋아할까? 라는 둥... 횡설수설했다.
아니, 경비를 서려면 마을 입구에서 서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마을 외부와 내부로 이어지는 뒷길이라던가... 엉뚱하고 이상한 녀석일세... 상인인 줄 알고 말을 걸려고 했던 내 자신이 바보같았다. 나는 매니의 이야기를 대충 듣고, 다시 도끼가 어디 있나 뒤지러 반대편 길 안쪽을 살폈다.
그러다 아주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다른 꼬마와 또 마주쳤다. 이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뭐가 그리 기쁜지 펄쩍펄쩍 뛰면서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고서, 바깥 세상에서 왔냐고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여기저기 보더니 당돌한 질문을 했다.
"형... 활이랑, 검도.. 잘 쓰는 것 같은데? 형아 엄청 강하지?"
갑자기 강하냐고 물어보면..... ....어.... 매우 당황했다. 이 꼬마에게는 그저 내가 강해만 보이겠지만, 나는 아직 강하다고 할 순 없으니... 그래서 별로 그렇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꼬마는, 내가 강하건 아니건 그런 게 상관 없는 것 같았다. 분명 다양한 무기에 대해 알고 있을거라고 중얼거렸다.
무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니... 나크시 마을에서 들었던, 그 기사 집안의 후손인가? 하긴, 나도 저만했을 때 무기에 대해 관심이 많긴 했다... 꼬마는 내게 큰 결심 했다는 듯 다시 말을 걸었다.
"...음.. 분명 다양한 무기를 쓸 줄 알겠지...? 그럼 말야 형아... 내 꿈을 이루어 주지 않을래?
꿈? 뭐길래 그럴까 싶어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아주 해맑게 웃으며 실제로 무기 구경을 하고 싶다고 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무기를 좋아하셨는데... 마지막까지 못 본 무기가 있거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구나... 마지막까지 못 보신 무기라... 엄청 대단한 무기가 아닐까?? 약간 긴장하는데, 꼬마는 자기가 말하는 무기를 가져와서 자기에게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자기가 잘 보고, 대신 천국에 계신 할아버지께 말해 준다고....
꼬마의 마음이 아주 따뜻하고 기특해서, 왠지 뭉클해졌다. 그래서 아주 흔쾌히 좋다고 승낙했다.
"그럼 무슨 무기를 가져와야 해?"
내가 묻자, 꼬마는 턱에 손을 대며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못 본 무기가 하나가 아닌 모양이다... 나도 모르는 무기라면 어디서 구하지? 꼬마의 대답을 기다리며 기대를 하는데, 녀석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의외였다.
"...형! 그럼 여행자의 검이라고 알아?"
여행자의 검? 당연히 알지.... 근데... 아직 나도 이번 생에서는... 얻어보지 못했단다.... 라고 속으로만 대답했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꼬마는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그거.. 책에서는 본 적 있는데 실제로는 본 적 없거든~"
무기에 대한 책도 가지고 있다니, 진짜 기사 집안 맞나보다...
꼬마아이는 다시 한 번 내게 신신당부했다.
"만약 손에 넣으면 나한테도 보여줘! 약속했다?"
그리고는 꼬마는 신이 나서 인사를 하더니 어디론가 뛰어갔다. 여행자의 검이라... 꼭 찾아야겠군.. 생각하다 아 맞다. 도끼는 어디 있지? 도끼? 이렇게 못 찾아서야... 장작 30개를 언제 마련한담?
나는 마을 구석구석을 살피며 언덕길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