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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엘리 Jan 13. 2024

세 번째 기억 - 비 오던 날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33)


ㅇ월 ㅂㅂ일


두번째 기억을 찾은 이후 나는 아직 가지 않은 탑을 찾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일기를 쓰는 오늘은 하일리아 호수 근처로 와 버렸다.


호수에 있는 다리엔 높은 곳도 있으니, 그정도 높이라면 밝히지 않은 탑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호수의 탑으로 워프해보기도 했지만 내 기대와 달리 붉은 등이 빛을 내고 있는 탑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돌이켜보면, 주변 풍광을 바라보다 넋을 놓고 멍해지는 일이 잦았다. 하일리아 대교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어 한동안 그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며 여기저기 쏘다닌 탓도 있다.


하일리아 대교를 한참 바라보며, 시작의 대지에서 출발했던 때를 돌이켜보기도 했다. 하일리아 대교는 리잘포스 떼와 처음 만났던 곳이고, 처음으로 전투를 하다 기절해보기도 한 곳……돌이켜보면 씁쓸하지만, 이전 전투의 기억을 되새겨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다 노랗게 번쩍이는 용이 하일리아 대교를 넘나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용 주변에서는 자연의 힘을 거스르는 바람이 불었다. 번쩍거리는 빛은 용의 몸에서 나와 공기 중으로 퍼져갔다. 저 빛에 왠지 가까이 가면 위험할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다.


노란 빛을 띤 용에 대해 알고 싶어 시커 스톤으로 사진을 찍으려 하다 실패했다. 사진기를 켠 사이에, 용은 저 너머 호수 안으로 스르륵 사라져버려 때를 놓쳤다.


허탈해진 나는 그냥 기록 기능을 눌렀는데, 작동 불능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당황하여 시커 스톤의 앨범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용량 초과’ 이므로 기존의 사진을 삭제해 달라는 안내가 떠 있었다.


흠.. 기록을 계속 이어가려면 필요없는 사진을 정리해야하는구나… 생각하며 어느 사진을 삭제할지를 골똘히 생각했다. 사진을 삭제하며 넘기다보니 어느덧, 공주가 찍었던 사진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사진들 중에 하일리아 대교가 배경으로 찍힌 사진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주변 풍광을 꼼꼼히 살피면서 사진 속의 모습이 실제 어느 장소일지를 다시 한 번 찾으며 하일리아호 주변을 돌고 돌았다. 한번 돌아서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꽤 오랜 시간 기억의 장소를 찾기 위해 나무들을 주의깊게 살펴봤다. 쉽지는 않았지만, 이 주변에도 기억의 장소가 있다니, 꼭 찾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러다 커다랗게 속이 빈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구릉을 찾았고, 구릉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오면서 사진 속에 나온 커다란 나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구릉 아래에는 이렇게 물에 대부분 잠긴 마을도 있었다. 아데야 마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꽤나 큰 마을 터였다. 여기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100년 전에 사라졌겠지... 쓸쓸해지는 기분에 잠시 멈춰섰다. 지도를 보면서 실제 지형과 비교를 하다가, 지도상에 뭔가 큰 나무 표시가 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일단 여기까지 가보자!



지도를 보니 아데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구릉을 올라가 하일리아 호수가 강과 만나는 지점의 어느 산 중턱... 기도를 위한 석상이 2개 서 있는 곳... 큰 나무... 여기라는 직감에 시커 스톤을 바로 켰다. 아... 또 다른 기억을 이렇게 찾게 될 줄은 몰랐는데?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커 스톤을 켜서 앨범 속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맞다! 바로 이 자리... 하일리아 대교가 보이는 위치도 너무나 딱 들어맞는다! 시간은 너무도 다른 때였지만, (사진은 한낮) 그래도 기억할 수 있겠지?



사진의 모습이 보이는 자리에 서 있는데 - 이번에는 마스터 소드가 보였다. 앗? 아... 내가 마스터 소드를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자세, 저런 자세를 취하며 검술 연습을 하고 있는 나..... 그런데 젤다 공주는 어디 있지?



집중을 위해 눈을 감자, 검을 휘두르는 사이 너머의 나무 아래에 젤다 공주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비를 피하려고 거기 앉아 있는 것이었다. 사진기 앨범 속의 사진은 그렇게 흐린 날 같진 않았는데.. 기억 속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가운 빗줄기가 계속 내 머리 위로 떨어졌고, 온몸이 젖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계속 검을 휘두르며 이렇게 저렇게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젤다 공주는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었다. 어디를 가던 길이었을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분명, 이동 중 비가 내렸을테니 비를 피하기 위해 이렇게 있었던 거겠지....



젤다 공주는 나를 바라보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한탄했다.


"전혀 그칠 기미가 없네요...."



그러나 따분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하다는 듯 한숨 쉬는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은 사람은 나였다. 그녀가 그러던 말던, 조금의 시간이라도 났다면 연습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나는 검을 들어 어딘가를 집중하며 계속 일격을 날리기 위한 자세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이 기억은, 회생의 사당에서 일어나서 처음 무기를 봤을 때 그렇게 낯설게 느끼지 않았던 이유를 깨닫게 해 주었다.


확실하지 않았지만, 나뭇가지를 들고 휘두르며 처음으로 보코블린을 물리쳤을 때, 뭔가 전투를 했던 기억이 문득 문득 났던 일들도...새로운 무기를 발견하면 낯설긴 했지만, 손에 쥐면 어떻게 써야 할지 대략적 감이 잡혔던 일… 몇 번만 휘둘러 보면 왠지 이렇게 써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던 일도…


무기를 들고 쓰는 일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들은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생각하고 끊임없이 수련했던 과거의 내 행동이 그대로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젤다 공주는 그런 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의 뒤를 잇고자 기사의 길을 선택해서 훈련을 거듭하고......"


아- 젤다 공주의 말에 하테노의 집이 다시 떠올랐다. 아버지가 하이랄 성에서 연락을 받았던 일은... 아버지가 기사였기 때문이었구나! 그래... 그 때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길을 떠나신 것은, 하이랄 성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나를 위해서.... 하이랄 성에서 열리는 기사 선발전 때문이었다.


검술을 처음 가르쳐 주시고, 나를 이끌어 준 스승같은 나의 아버지…. 얼굴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늘 수련이 먼저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봤던 나도 살짝 떠올랐다. 기억 속 비를 피하려고 나무 아래 앉아 나를 보던 젤다 공주처럼, 나도 그렇게 앉아 아버지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봤다. 어렸던 나의 모습이 기억 속 젤다 공주의 모습과 살짝 겹쳐 떠올랐다 사라졌다.



"마침내 당신은 퇴마의 검에 선택받을 정도의 검사로 성장했죠."


젤다 공주는 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사를 선택해서 열심히 훈련을 했기에 퇴마의 검에게 선택을 받았다고 말했다. 음...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이번 기억이 떠올라 생각났는데 - 나는 꼭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서 기사의 길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그건 확실했다.



젤다 공주는 갑자기 정색하면서 나를 정면으로 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진심이었다. 젤다 공주는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믿고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지난 번 두번째 기억과는 판이하게 다른 그녀의 태도...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흠...



갑자기 젤다 공주의 낯빛이 꽤 어두워졌다. 공주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숙였는데, 무언가 말을 할지말지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말에 나는 검을 휘두르다 멈추었다. 사실 젤다 공주가 말을 시작했을 때 부터 검을 휘두르던 속도는 꽤 늦어졌다. 그녀의 말에 집중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를 계속하는 젤다 공주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만일.... 만일, 당신에게 검의 재능이 전혀 없고....."



"그럼에도 주위 사람들이 '너는 기사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반드시 기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한다면....."


나는 의외의 질문에 젤다 공주를 응시했다. 설마 저런 질문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계속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셨을 것 같나요?"


젤다 공주는 고개를 숙인 채,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


이번 기억도 그 질문을 끝으로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왜 다음이 기억나지 않지.... ???


하지만, 그녀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번엔 알 수 있었다. 젤다 공주는 성스러운 힘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본래 타고났을 '재능'을 스스로 의심할 정도였다.... 과연 본인은 왕가에 태어난 하일리아 여신의 후손으로써 어찌하여 이렇게도 ... 봉인의 힘을 쓸 줄 모르는지....


그래서 기억 속의 나도 좀 놀랐던 것 같다. 하일리아 여신의 후손임을 의심할 수 조차 없는 젤다 공주인데도... 주변의 질책이 심했다는 것도... 대략 짐작할 수 있는 기억이었다.



시커 스톤을 제자리에 찼다. 잠시 서서 그때와는 다른 달빛을 받은 나무를 바라보았다.


젤다 공주의 질문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냐고....


그 때 나는 공주에게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 그것도 심히 궁금했다. 하지만 기억은 거기까지... 기억나지 않는 것을 기억하려고 애써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나는 ...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를 생각했다. 만약, 젤다 공주가 지금 내 앞에서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공주님. 저는 아버지의 뒤를 잇고 싶다는 생각보다 검을 휘두르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어서 검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전 저의 재능을 믿어본 적은 없어요. 프루아가 일기에 썼듯 천재 소리도 들었던 모양이지만, 당신과의 기억을 찾아 떠올리게 된 아버지는 제게 늘 말씀하셨죠. 검사는 방심하면 그 날 죽는다고요. 그래서 언제나 나태해지는 나 자신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그 틈에도 훈련을 했을 것이고요...


그날 당신에게 제가 뭐라 대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제게 재능도 없는데 기사의 길을 뒤이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면 ... 단지 기사의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면... 저도 매우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재능도 없다고 느끼고 있는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 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니...


그렇지만, 아버지의 길을 이어 가는 건 중요한 일이죠. 하일리아인이라면 그 길을 가야만 하고요. 저는 제게 그런 질문을 한 사람에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여 재능이 없는 것 같아도 믿고 이루어야 할 일은 해낼테니 두고 보라고 했을 겁니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거기까지 생각하다 나는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시에 내가 얼마나 젤다 공주의 고민을 이해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말들은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며 최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는... 전혀, 대답이 되지 못했겠지...


아마도 나는 그녀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못했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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