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장이의 꿈

by 엘리준 Ellie Jun

진흙 한줌 움켜들고 녹로를 돌린다.

짓이기는 거친 손길 만져지는 상흔들


어지러운 회전 황홀인가했더니

메스꺼운 역함에 구토를 일으킨다.

날카로운 메스자국 서슬퍼런 내가 있다.

아로새긴 흔적마다 함몰된 내가 운다.


화염 속 달구어진 미궁의 늪에 허우적대다

못내 겨워 터져버린 주검 곁에서

덩그라니 홀로라며 고독에 떤다.


후미진 틈으로 빛이 새어들어온다.

토기장이 손에 들린 꿈 하나

젖어드는 눈가 저미는 愛歌

나즈막히 울려 퍼지운다.



@작가의 생각노트


흙 한 줌에서 도자기로 빚어지는 과정을 보며, 문득 '나'를 떠올렸다.

처음에 나는 그저 작고 연약한 흙에 불과했다.

형체도, 쓰임도 없던, 존재하되 아무것도 아니었던 상태.


그러나 토기장이의 손길이 닿자, 조금씩 형태가 드러나고

나만의 무늬와 색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손길은 다정하며 단호했고,

무너뜨리면서도 다시 세우는 손길이었다.


가장 힘겨웠던 순간은

불가마 속을 지나던 시간이었다.

불의 뜨거움은 내 치부를 들추고 태우며,

나만의 고유한 색과 무늬를 만들었다.


완성된 듯 보이나, 여전히 빚어지는 중이다.

다행인 것은 나는 아직 깨지지 않았고,

여전히 그 손에 들려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은 녹로 위를 맴돌고 있나요?
상흔으로 당신만의 무늬와 색을 만들고 있나요?
혹은 불가마의 뜨거움을 견디고 있나요?

어느 여정이든,
그대는 무너지지 않고, 빚어지고 있습니다.


150403_ceramics_01.jpg https://blog.lgchem.com/2015/04/ceramics-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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