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달라, 한국 vs 미국 (5)
약 보름 남짓의 한국 힐링을 마치고, 1월 초, 다시 미국 컴백. 한국과 달리 미국의 대학들은 연초에 개강한다. 시차 적응할 새도 없이 학교에 출석해 봄학기를 시작해야 했던 꽤나 빠듯한 일정. 봄학기 담당 교수님께 개별 면담을 신청하며 출산 일정을 알리고, 미리 대체 과제를 부여받거나 예정된 프로젝트를 당겨서 개별적으로 먼저 진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기가 참 바빴다. 학교 수업 스케줄을 무사히 소화해내는 것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일상, 허나 그 와중에도 머릿속을 내내 떠도는 또 하나의 수업에 대한 갈망이 있었으니... 바로 예비부모를 위한 출산교실.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찾은 미국 OB/GYN. 28주 차를 넘기고 있는 시점이었다. 임신 후기, Third Trimester에 가까워진 탓일지, 병원을 찾을 때마다 뭔가 결연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곧 부모가 된다니! 마침 스태프가 우리 부부를 위해 가져다준 리플릿에는 출산하기로 예정된 병원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담겨있었다. 한 마디로 병원에 대한 홍보책자. 내 경우, 남편 지인의 소개로 출산하고자 정해둔 병원이 이미 있었고, 담당의가 그 병원 네트워크에 속해있었기에 선택에 대한 고민이 없었지만, 일반적으로 이곳에서는 출산 병원을 정하기 위한 '병원 투어'도 진행한다고. 병원에서의 분만 과정에 대한 자세한 소개에 뒤이어 담겨있던 것은 바로 병원 내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출산교실에 대한 정보. "바로 이거지, 우리 이거 다녀오자!"
평일 주중 시간대는 내 학교 스케줄 상, 절대 다녀올 수 없었고, 토요일 하루 종일 남편과 함께 드는 클래스만이 유일한 옵션이었다. 한국에서도 주중 클래스가 많아서 '워킹맘'들은 도대체 수업을 들을 수 없는 거냐는 건의가 많다고 들었는데, 미국도 다를 건 없군. 헉, 근데 이건 너무 하다.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이라니, 이것 참! 아무리 쉬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대도 듣다가 분명히 지쳐 쓰러질 것만 같다. 길게 진행되는 수업인 만큼, 수강료도 거의 토플 응시료와 맞먹는 수준. 그래도 그만큼 도움이 될 거라는 예비부모로서의 직감을 믿고 190달러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투척했다. 마침 묘하게 '밸런타인데이' 다음날이네. 특별한 기념일 이벤트가 되겠구나 싶었다.
미국에서 출산교실을 들어보고 싶었던 데는 이곳에서의 출산문화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고픈 마음도 작용했다. 평소 그때그때 궁금하거나 우려되는 사항들에 대해서는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야 있었지만, 어쨌든 최종 출산은 미국 현지 이곳에서 이뤄지므로, 각종 구체적인 진행사항이나 세부 용어에 있어서도 '영어 표현'에 익숙해져 있을 필요가 있었다. 한국어로도 산부인과 전문용어는 어색하고 낯설 때가 많은데 심지어 영어로는 더더욱이 낯설다. 다들 한 번씩은 스쳐간다는 임신 출산 한국 서적도 소지하고는 있었지만, 분만 과정 전반에 대한 설명을 'in English'로 머리에 담아 두고 싶었다. 아아, 역시 타국에서의 출산과정은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다. 그리고 늘 생각한다. 한국에서였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았을까.
총 12팀의 부부가 모인 자리. 이 풍경 왠지 미드나 영화에서도 봤던 것 같다. 한국의 또래 임산부들과 모인 자리가 아니다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이곳 현지에서 비슷한 주수의 임산부들이 모인 자리는 처음이라서 살짝 흥분. 이 자리 역시 예비맘들이 주인공들이다 보니 같이 따라온 남편들은 뭔가 다소 시큰둥한 표정들이었다. 이 역시 한국과 미국은 닮았네.
다들 30주차를 넘긴 임산부다 보니, 평소 앉는 자세나 눕는 자세에 불편함들이 많았던 모양. 편한 자세를 취하기 위한 강사의 팁이 이어졌고, 가진통이나 진진통이 올 때를 대비해 연습해두면 좋을 호흡법에 대한 실습도 진행됐다. 실제 분만에 이르기까지 진통을 해나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단계별로 설명, 출산이 완결될 때까지의 아기 상태에 대해서도 꼼꼼히 이론적인 부분을 풀어줬다. 중간중간 도와주시는 보조 스태프는 있었지만, 강사 한 명이 하루 종일의 스케줄을 담당하다 보니 강사도, 수강생도 조금 '지겹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을 듯. 그래도 이 모든 게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 예비 부모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귀를 활짝 열어뒀다. 에잇, 그래도 간식은 좀 넉넉히 준비해주지. 디카페인 커피와 핫 초콜릿이 전부. "한국에서였더라면 맛있는 간식 엄청 줬을 거야. 수업료가 얼만데."
가장 기다렸던 시간은 출산교실과 더불어 함께 진행됐던 '병실 투어'. 실제 분만이 이뤄질 분만실과 이틀 정도 머물게 될 병실을 둘러보는 시간. 미국 대부분의 출산 병원이 그렇듯이, 이곳도 1인실, 그리고 모자동실이 원칙이란다. 따로 신생아에게 의학적 조치가 필요한 게 아니라면 엄마와 아기가 출산 직후부터 내내 같은 공간에 머문다고. 두 달쯤 뒤에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쫄깃'해졌다. 지금은 이렇게나 평화롭게 병실을 '감상'하지만 그땐 적어도 '전쟁터' 같은 느낌이 들겠지? 병실 투어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아기가 태어났다'는 신호를 알리는 멜로디가 병원 복도에 때때로 울려 퍼졌다. 곧 남의 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두근두근.
장장 8시간의 꽤나 기나긴 출산교실이 끝나고 수료증을 받았다. (보험사에 수강료 환급 신청을 할 때 꼭 필요하다고). 지금 시각 4시 40분... 이거 나만 표정 굳은 거 아니지? 다른 임산부들 역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표정. 무엇보다 배가 너무 고프잖아! 육체적으로는 굶주렸으나 심리적으로는 곧 태어날 아기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마음을 불렸으니 만족해야 하려나? 출산 클래스에서 연습한 호흡과 자세가 d-day, 결전의 날에 부디 쏙쏙 도움되기를. 배고프리 만큼 열정을 쏟은 하루 8시간의 에너지가 부디 헛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