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달라, 한국 vs 미국 (6)
때는 바야흐로 2020년 1월 중순. 지금 같은 코로나 공포가 온 세계를 장기간 덮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시절이었으니, 병원을 오가는 발걸음에도 부담이 덜했다. 한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시차 적응이 안돼 '해롱해롱' 하고 있었다는 것만 빼고는 장시간 비행기 탑승 이후에도 전반적인 컨디션은 오케이. 하지만 새해 들어 미국 산부인과는 첫 방문이었던 이날! 내겐 해결하지 못한 검사가 하나 남아있었으니, 바로 임. 당. 검. 사.
28주에 접어들던 시점이었으니, 평균 임산부들에 비해 살짝 '지각'인 셈이었다. 대부분 24주, 25주에 접어들면 이 어마어마한 숙제를 시원스럽게 끝내는 듯. 나는 한국행이 예정돼 있었으므로 최대한 늦출 수 있는 만큼 늦춰서 검사를 진행하기로 예약을 잡아뒀다. 그리고 바로 결전의 그날. 미션은 미리 받아둔 임당 검사 시약을 검사 딱 한 시간 전에 단숨에 들이켜는 것. 과정은 딱히 복잡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 검사를 잘 치러내기 위해 마음이 복잡했던 게 지난 3-4주에 달하니, 이거 꽤나 스트레스인 건 분명하다.
"임당 검사는 식단 조절한다고 통과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호르몬 영향이 크기 때문에 상관없어요. 단 것 많이 먹었는데도 저는 가뿐히 통과했어요"
각종 맘 카페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임당 검사 통과 후기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다들 입을 모아 했던 이야기는 엄마의 식단 조절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으나, 통과 여부는 또 딱히 식단 조절했던 전력과 상관 없었다는 것. 검사 전 날, 잔뜩 단 케이크와 쿠키를 조절 없이 흡입하고도 검사 통과에 문제없었다는 후기를 보며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평소 빵과 과일은 워낙 애정 했던 나인지라, 왠지 '통과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늘 나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 혹시라도 재검대상에 당첨되면 무려 4시간가량을 병원에 머무르며 혈액검사만 서너 번을 더해야 한다고 들었다. 으악.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잖아!
하루 이틀만이라도 당질류의 식사량을 줄이고, 신경 좀 써볼까 싶었지만, 그 역시 나의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더랬다. 겨우 이틀 전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는 사실은 = 곧, 기내에서 물밀듯이 밀려드는 헛헛함을 메우기 위해 탄수화물 똘똘 뭉친 기내 스낵과 손바닥만 한 크기의 대왕 쿠키, 무제한 제공되는 달콤한 과일주스를 참 많이도 먹었다는 것 + 시차 적응을 못해 새벽부터 깨어나 야식 아닌 야식을 무궁무진 흡입했다는 것 + 채 물러나지 않은 피곤함을 '허기'라고 착각하고 잠깐의 공복도 참아내질 못했다는 것. 하루 정도만이라도 소박한 간헐적 단식을 시도해볼까 했으나, 시차 적응 못한 임산부에게는 무리한 도전이었음을...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검사 전 마지막 식사는 사과 1개, 우유 1잔, 그리고 몽실몽실한 새하얀 찐빵 1개.
스프라이트 맛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검사 시약이 맛있기를 바라는 건 무리한 욕심이겠으나, 그래도 좀 '먹을만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집에서 병원까지 30분 정도 소요되니, 집에서 미리 시약을 마시고 병원으로 향하면 1시간 '카운트 다운'에 딱이겠다 싶었다. 절대 쉬엄쉬엄 마시면 안 된다고 주의를 받았기에, 시원스럽게 '원샷' 하려고 했는데? 와우. 이게 맘처럼 안된다. 분명히 사이다와 비슷한 맛인 것 같은데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격하게 말하자면 뱉고 싶은) 사이다 맛이었달까? 작은 병 하나 들이켜는 데 무려 5분이 넘게 걸렸다. 마시면서 내내 생각했다. "이걸 또 해야 한다면...?"
혈액 채취에는 1분도 채 안 걸리는 것을, 이토록 애를 태우고 태웠던 임당 검사. 시약을 들이켜고, 1시간을 카운트 다운하고, 피를 뽑는 순간 내내, 왠지 재검통보가 올 것만 같아서 불안 또 불안. 만약 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임당 확정이라면 출산 예정일까지 식단은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 것일까. 검사를 마치고도 조마조마하기만 했던 마음은 선배맘들의 후기를 폭풍 검색해보며 달래보기.
과연 결과는? 다행히도 가뿐히 '통과'. 오예! 궁금해서 애가 닳았던 나는 실시간 환자 포털에 등록된 검사결과지 업데이트 여부를 클릭 또 클릭, 걱정했던 것보다 낮은 수치로 안전하게 무사통과해냈다. 달콤한 간식과 과일을 조절하지 못해 내내 죄책감이 맴돌고 있었던 터라, '어려운 시험을 운 좋게 잘 본 것처럼' 방방 뜨고 싶던 심정! 딱히 식단 조절을 위해 노력한 게 없었던 일상을 살짝 돌이켜보건대, 선배맘들의 말이 꼭 들어맞는 셈.
달콤한 것
많이 먹어도 괜찮아요.
임당 검사 결과는 호르몬이 좌우한다고요!
까다로운 교수님께 A를 받아낸 것 같은 비슷한 마음으로 '임당 검사' 수치 결과를 내내 기억하며! 그날 저녁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 당. 히. 현미 뻥튀기 과자를 아삭아삭 오도독, 입안 가득 오물거렸다. 검사를 안전히 넘겼다고 해서 모든 간식을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신호를 받은 것은 아닐 텐데, 야식을 먹는 자의 손길이 이토록 당당할 수가! 오늘만큼은 뭐 어떠랴. 어렵기로 소문한 중간고사 과목에서 꽤나 높은 점수를 찍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었으니까. 몇 주를 벌벌 떨면서 기다려온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호기롭게 통과한 기분이었으니! 이 정도 보상은 합당하다. 아삭아삭. 오도독 오도독.
한국 출산 예정인 예비맘에게나, 미국 출산 예정인 예비맘에게나, 참 어렵고 까다로운 숙제, 임당 검사. 28주 이후로도 넘어야 할 이러저러한 벽들이 많을진대, 40주의 약 중간 지점 가량에서 정말이지, '중간고사' 같았던 시험 아닌 시험. 일단 한숨부터 '휴...' 한국도 아닌 타지에서마저 엄격한 식단 조절에 들어가야 했다면, 더더욱 서러웠을 걸 알기에. “다행이다 다행이다.” 중얼거리기를 몇 차례. 자, 이제 남은 약 10주가량의 기간, 어떤 무시무시한 미션들이 또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