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만삭 일기 (4)
예정일은 4월 11일이었다. "새 식구를 맞이하는 데 부족한 건 없으려나?" 4월 첫날 시작과 함께 다시 한번 꼼꼼히 점검해보기.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심각 상황이 초절정이라 불리는 시기!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건, 위기 속에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차근차근 디데이를 준비해나가는 것.
D.DAY를 기다리며 1. 밀린 영화 챙겨보기
출산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시점부터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눕는 좌세가 불편하고 속이 시도 때도 없이 쓰리다 보니 편안히 서너 시간 잠 청하기도 쉽지 않았다. 11시에 잠들면 3시도 채 되지 않아 눈이 떠지는 탓에 느리게 지나는 듯한 시곗바늘이 밉기만 했고, 서너 시에 잠들어도 아침 7시가 채 되기도 전에 벌떡 깨고 마는. 차라리 이럴 바엔 '잠 안 오는 시간'마저 즐겨볼 테다. 한국영화든, 외국영화든 작품의 출신 국적은 불문. 대신 '육아'와 '아기'가 소재가 되는 콘텐츠를 주로 택해서 시청했다.
작년 하반기 한국에서 센세이셔널했던 <82년생 김지영>부터 스칼렛 요한슨과 크리스 에반스 주연의 <내니 다이어리>, 벤 에플렉 주연의 <저지걸>,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패밀리맨> 차근차근 다시 보기. 대학시절 이미 봤던 작품일지라도 출산을 앞둔 시점이라서일지 한 장면 한 장면 다가오는 농도가 달랐다. 예전엔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봤던 '내니 다이어리'에서 육아를 맡는 엄마들의 시선을 따라가게 될 줄이야. 그 엄마들을 대하는 보모, 애니의 감정 곡선에 밀도 있게 집중하게 될 줄이야. 눈이 일찍 떠진 새벽부터 정오에 이르는 시간까지는 침대에 기대 누워 유유자적 영화를 즐기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지독한 불면에 대한 스트레스를 똑똑하게 감당해 준 소소한 재미들.
D.DAY를 기다리며 2. 놓칠 수 없는 과일 먹방
원래도 과일을 참 좋아했지만, 임신 이후 과일을 종류 불문, 무척 많이 먹었다. 평소 즐겼던 양의 세 배쯤은 족히 되는 양을 꾸준히 섭취했달까. 27주차에 임당 검사를 무사히 통과했던 게 어찌나 다행이었던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들렀던 한인마트에서 딸기나 망고, 참외를 꾸준히 구입해왔고 (가격은 참으로 사악해서 영수증을 미처 보지 못하겠더라. 숫자를 정확히 확인하는 순간 꼬깃꼬깃 찢어버리고 싶더라니.) 집 근처 일반 마트에서도 바나나, 허니 크리스피 사과, 키위와 수박 구입은 늘 필수였다. 과일을 너무 많이 먹어서 마지막 달에 아기 체중이 한없이 늘기만 하면 어쩌나 걱정도 스멀스멀 밀려들었으나 맛있는 걸 어쩌나. 일단은 당기는 음식은 꾸준히 열심히 먹어두는 걸로. 코로나 시국 탓에 거리의 레스토랑들도 문을 걸어 잠근 때였다. 지금 같은 시국에 미국 예비맘에게 근사한 레스토랑에서의 '최후의 만찬'은 그 어디에서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과일이라도 생애 최후의 순간인 것처럼 먹어두는 수밖에. 어쨌든 난 D.DAY를 기다리며 체력을 비축해둬야 했으므로.
D.DAY를 기다리며 3. 매주 한 번씩 병원 출석체크
35주 차에 접어들면서부터는 OB/GYN에 매주 출석 체크해야 했다. 1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우리 부부에겐 각자 출근 일정과 수업일정이 없는 금요일이 무조건 병원 데이였다. FRIDAY is OBGYN! 아기 상태를 점검하러 가는 건 정말이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금요일이 다가오는 속도가 점점 빠르게 느껴져서 때때로 그 발걸음이 '무겁기도'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집에서 자가 격리하는 게 모두에게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데, 한 번의 외출을 감행한다는 것은 어찌나 '부담'스럽던지. 마스크를 단단하게 착용하고, 손세정제를 쥐고 다니며 손이 거칠게 메마르고 트도록 발라두곤 했다. 다른 사람과 마주해야 하는 공간에 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자, 험난한 과제였다.
하지만 별 수가 없다. 아기는 한 주 한 주 꾸준히 자라고 있고 곧 세상과 마주해야만 하는 운명인 것을. 꿋꿋이 태동검사를 위해 병원에 출석하고 마스크를 쓴 채로 담당의와의 상담을 매주 이어갔다. NO HUSBAND! 산부인과에 본인 외, 보호자 남편이 동행할 수 없다는 원칙이 세워지면서 마지막 검진 때는 나와 담당의, 남편 세 사람이 영상통화로 소통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D.DAY를 기다리며 4. 한국판 각종 출산용품 공수
코로나 사태 이전 원래 계획대로라면, 출산 임박 시점, 친정엄마의 미국 방문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공포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순차적으로 번져나가면서 일정기간 미국으로 향해오는 항공편이 쏙쏙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2020년 봄 기준, 보스턴 행 직항 편도 잠정 운영 중단 (현재는 재개했다). 결국에는 친정, 시댁 부모님들 모두 미국에 오시는 일정들이 무기한 불투명해진 상황. 친정엄마의 입국과 함께 받아보려고 했던 출산용품들을 택배 편으로 미리 공수받아야만 했다. 한국에서 미리 진맥받아 지어뒀던 산후보약을 비롯해 신생아 이불과 각종 아기 용품들. 수량도 적지 않고 무게 역시 상당했던지라, EMS 택배비용은 가히 어마 무시했다는 이야기. 배보다 배꼽이 크다한들, 어찌하리. 더 좋은 대안이란 없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택배 배송이 완료되는 데까지 한 달 넘게 걸릴 수 있다는 경고를 접했으나 나흘남짓만에 안전히 받아볼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 중, 다행이었다.
아기 용품을 해외 사이트를 이용해 직구하는 경우도 많지만, 역으로 '한국'에서 사야 좋은 용품들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국민'이란 애칭이 접두사처럼 붙은 일부 육아용품들은 나 역시 '한국' 맞춤형으로 구매하고 싶었다. 아무리 글로벌하게 아기를 키우고 싶다가도 엄마는 뼛속까지 한국이 편한 사람이기에. 국민 아기띠, 국민 육아서적 등등! 역시 친정 찬스란 최고다. 그 수많은 용품들이 켜켜이 정리되어 말끔하게 미국 우리 집까지 도착. 출산 임박일 전까지 하나둘 풀어보는 재미, 각종 용품들의 사용설명서와 이용후기들을 탐독하며 '익숙해져 가는 일들'. 출산을 열흘남짓 앞둔 예비맘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D.DAY를 기다리며 5. 남편과의 오붓한 시간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마음이 경건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부부 둘만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오늘이 진짜 마지막일지도 몰라!" 어느 하루는 무한정 설레며, 또 어느 날은 마냥 떨면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둘의 시간을 마주하기. 함께 간식을 먹고, 밥상에 앉으면서 틈날 때마다 우리의 기나긴 여정, 그 일부를 들춰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기억들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추억으로 다독여주기. 서로에게 한 뼘의 응원을 보태주고 그 따뜻한 응원의 기운을 앞으로 닥쳐올 크나큰 이벤트를 헤쳐나갈 에너지로 알뜰살뜰 비축해두기. 약 열흘 뒤, 우리의 눈 앞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