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초절정, 미국에서 출산하다
'삼칠일'이라는 말이 있다. 초록색 검색창이 명명하는 바에 따르자면, 아이를 낳은 지 스무하루째 되는 날.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3번 거듭하는 기간. 7일을 세 번 지낼 때까지 어떤 금기를 지키거나 특별한 의미를 두고 대응해야 하는 기간. 그래서 대부분의 산모들은 출산 이후, 조리원에서 2-3주의 시간을 보내며 삼칠일에 준하는 의식을 치르곤 한다. 조리원에서는 출산 후유증과 다가올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를 의도적으로 잊기 위해 노력하고, 오로지 산모인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여왕처럼 지내라는 말들이 흔히 오고 간다고. 4월 9일 목요일 출산한 나의 경우, 4월 마지막 날까지가 이에 해당됐다. 적어도 5월이 시작되는 날 전까지는 바깥 외출을 삼가고 아기와 함께 내 몸과 마음이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에 차분히 침착하게 집중해야 했던 셈.
하지만 미국 출산은 분명 달랐다. 낯선 이 서구의 땅은 내게 4월 30일까지 집에 가만히 있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와 이렇게나 날 강하게 키우는 미국이라니! 4월 13일, 부활절 연휴가 끝난 바로 그다음 날, 아기를 데리고 소아과 첫 검진에 가야 했다. 출산 후 첫 공식일정인 셈. 주마다 방침이 다를 수 있고, 병원마다 상세한 원칙들이 다르겠으나, 미국 이곳의 병원 시스템은 내겐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출산 전까지 방문하는 내 산부인과 담당의의 클리닉 따로, 내가 출산하기로 결정한 병원 따로, 그리고 아기가 출산 직후 바로 가야 하는 소아과 따로. 우리 부부가 선택하고 최종적으로 정해야 하는 병원들이 따로따로 분리돼 있었다.
출산병원에도 소아과 의사가 상주하고 있었고 주 방침에 따라 필요한 기본검진과 시술 (청력테스트 및 기타, 남자아기의 경우 circumcision에 이르기까지) 다 마쳤는데도, 엄마의 퇴원 이후, 최소 이틀 내 아기의 소아과 담당의를 보러 내원하는 게 필수원칙이란다. 오 마이 갓. 한 병원 안에서 모든 게 원스톱으로 다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하여 신생아 인생 5일 차, 산모 출산 겨우 5일 차 만에 바깥공기를 쐬어야 했다. 삼칠일까지는 집 밖에 발도 내딛지 말라고 하던데 21일이 뭐야, 병원에서 퇴원한 지 단 2일 만에 공식 외출이다. 제왕절개 출산에 비해 자연분만의 미덕은 빠른 회복에 있다고들 하지만, 일주일도 안된 산모로서 걸음을 한 발짝씩 떼기란? 상당히 불편하다. 아니, 어렵다. 그리고 많이 아프다. 아기 소아과 동행을 도와주실 누군가라도 있었다면 정말이지 나는 집에 간절히 머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부부 둘뿐, 아기와의 외출엔 최소 2명이 필요하다. 대안은 없고, 산모는 그저 기저귀와 물티슈를 챙겨 나가야 했다.
집에서 차로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 가까운 곳에 아기의 첫 소아과 진료를 잡아두었지만, 단 10분의 이동시간, 1시간 차를 타고 있었던 것처럼 두통과 어지러움을 증상을 동반했다. 어른도 이럴진대, 인생 5일 차 아기는 좀 힘들었을까. 카시트에 앉는 순간부터 어마어마하게 울다가 결국 지친 채로 잠들어 겨우겨우 소아과로 이동. 얼마나 놀라고 피곤했던 건지, 소아과 입성과 동시에 기저귀를 두 번이나 체인지! 너도 많이 지쳤지, 엄마도 많이 힘들었어. 운전을 한 것도, 카시트를 든 것도 아닌데 출산 5일 차, 산모 역시 이미 진이 다 빠져버렸다. 아기도 엄마도 스트레스 팍팍 받은 첫 외출. 정말 이보다 힘든 미션이 또 있을까.
옛날 영화에서 종종 보이듯, 의사가 집에 왕진하러 오는 시스템이 현존한다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하필 이런 날, 비까지 주룩주룩 오다니. 우산 쓸 정신도, 우산 받칠 여유 손도 없는 건 당연지사. 남편도 나도, 내리는 비에 몸을 적시며 그저 아기만 비 안 맞히려 애썼던 한 시간 남짓. 겨우 11시밖에 안됐다고? 말도 안 돼. 10시 병원 예약 이후 적어도 5시간은 흐른 듯한 피로감이 밀려들었다.
예로부터 삼칠일 동안은 대문에 금줄을 쳐서 새 생명이 탄생한 공간과 외부세계를 격리시켰다고 한다. 그만큼 산모와 갓 태어난 아기를 외부의 오염된 무언가로부터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21일을 보냈다는 건데... 난 그 신성한 원칙을 참 일찍이도 와장창 깨버리고야 말았다. 단 닷새 만에.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극도로 예민한 시국 아닌가! 이미 확진자 세계 1위를 확고하게 달리고 있는 지금 이 나라.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시시각각, '바이러스'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끊임없이 증폭시켜 가며 외출하는 내내 손이 까지고 부르트도록 세정제를 덧칠해야 하는 지독하게 험난한 여정을 이어가야만 한다. 우리 아기, 혹시 아주 미세한 확률로라도 바이러스 담긴 공기와 마주하면 어쩌나 카시트 캐노피와 담요를 치덕치덕 덧대어가며 불편한 표정만 내보여야 했던 시간.
외출이 끝나 집에 돌아와서도 잠깐이나마 바깥공기와 접촉한 담요와 손수건, 옷가지들을 소독하느라 바빴다. 결코 유쾌할 수 없는 분주함이었다. 씻고 또 씻어도 찝찝함이 내리 잠재되어 있는 듯한 기분. 1시간 남짓 외출했던 기억 모두를 박박 지워버리고 싶었던 마음이었으니.
21일 동안 부정 타지 말라는 뜻으로 상가에 출입했던 사람은 산모의 방에 발도 들일 수 없었으며 금줄을 경계선 삼아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비는 경건하고 신성한 영역을 만들어 주었다는 전설. 2020년 지금, 옛날과 아주 똑같이 그 전통을 재현하진 않더라도 삼칠일 간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믿음은 굳건히 남아있지 않던가.
금줄은 안 걸더라도 조리원 따뜻한 온돌방 안에서 편안하게 여왕처럼 휴식을 취해도 회복이 원활할까 말까 한 이 중대한 시기에, 오히려 코로나 시국에 바깥으로 발을 내디뎌야만 했던 현실은 걱정+불안+힘듦의 막강 컬래버레이션. '아, 이렇게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비 오는 날 바깥바람 대차게 쐬어야 한다니...' 억울함은 옵션. 미국에서야 미국법을 따라야 한다지만 삼칠일에 관한 우리네 전통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이곳 산모들의 일상이 그저 원망스럽기만 했던 날.
산모와 신생아가 아닐지라도, 집콕이 권장되고 있는 나날들.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매일같이 제발 stay home라고 호소하고 있는 요즘 같은 날들. 그 가운데 용기 내어 감행해야만 했던 아기와 나의 첫 외출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혹독했고 서럽기도 했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이미 영혼이 탈탈 다 털린 느낌이었다.
자연분만 역시 최소한의 '회복'은 필요하다고 부르짖는 나, 낯선 카시트를 타고 소아과 침대에 누워 기저귀까지 탈의해야 했던 순수함의 결정체, '영문도 모르고 빽빽 울어야 했던' 아기, 그리고 이 예민한 영혼 둘을 고이 모셔 데려갔다가 데려와야 했던 남편까지. 4월은 뭐가됐든 정말이지 잔인한 달인 게 틀림없었네!
고단한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또 한 번의 금기를 깨고 우리는 B사 햄버거의 시그니처 메뉴를 테이크아웃. 고소하고 짭짤한 맛으로 출산 5일 차의 힘겨운 외출 스트레스를 달랬다. 현관문을 넘어 금기를 깨고 패스트푸드 드라이브 쓰루 매장에 입장하며 또 한 번 견고한 삼칠일 전통을 깨부수고. 윽, 그나저나 이 햄버거 무지 맛있네!
우리에게 이미 삼칠일이란 없었으니. 진짜 삼칠일, 21일이 지난 그 날엔 어떤 모습으로 그 하루의 시작을 마주하고 있을까. 금기를 빨리 깨고 외출을 감행했던 만큼, 우리 세 식구는 좀 더 빨리 성장한 모습일까. 아니면, 철저히 전통을 무시한 탓에 두 세배는 나이 든 느낌으로 지친 기색만 두 배, 세 배 더 역력한 모습일까. 어디 두고 보기로 하자. 5월 1일. 삼칠일이 지난 그때 우리 셋의 모습을. 다만 어느 쪽이든 우리 모두 건강하기를, 이 예민한 시국 속에서 무사히 안전하게 미소 짓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