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초절정, 미국에서 출산하다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 속에서 자주 봤던 장면 중 하나. 아기를 출산한 뒤 조심조심히 걸어 신생아실로 향해가는 주연 배우의 발걸음. 신생아실의 유리창을 가운데에 두고 엄마 아빠와 갓 태어난 아기가 눈빛 교환하는 시간. 손이 마주 닿을 순 없어도 각자의 미소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흡족해질 수 있는, 단연 최적의 타이밍 되시겠다. 텔레비전 속에서 흔히 봐 온 이 장면처럼, 신생아는 신생아실에, 엄마는 엄마의 회복실에 누워있다가 때때로 극적 상봉하는 게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이곳 미국에선 한국판 '모자동실'이 지극히 흔한 풍경. 이름하야 mother & baby unit. 태어나자마자, 엄마랑 아기랑 충분한 스킨십을 갖고 몸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자는 의도. 다시 말해 아기가 태어난 뒤 엄마의 회복실에 함께 자리하며 엄마, 아빠의 손길을 느끼고 내내 같이 지내는 것. 위급 비상상황만 아니라면 신생아는 병원에 있는 내내 간호사가 아닌, '엄마'와 같은 병동에서 함께하게 된다.
당연히 모자동실이지!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내게 병실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한치의 고민할 필요도 없이 엄마와 아기가 함께 지낼 수 있는 '모자동실'을 택하겠다고 생각했었다. 보고 또 보고 있어도 자꾸 보고 싶을 것 같은데 다른 방에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면 내내 아쉽고 애가 타지 않을까? 아기 얼굴을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고 만지고 싶을 땐 얼마든지 살을 비빌 수 있는 그런 '한 뼘 거리'가 적합하다고 믿었다. 살짝 졸다가 깼을 때 내 눈 앞에 빙그레 미소 짓는 아기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면 상상 이상 행복할 것만 같았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정말 네가 내 아기 맞아? 믿기지 않는 환상 같은 순간을 1분 1초도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무서워요
8시 43분 아기가 세상에 반짝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가슴 위에 올라와 교감을 시도하는 '스킨 투 스킨 (skin-to-skin)' 시간. 출산 뒤 이어지는 의료 후처치가 모두 마무리된 뒤, 아기와 엄마 단둘이 고요하게 소통을 이어가는 그 소중한 연결고리. 몇 분 전까지도 배 안에 꼭꼭 숨어있던 존재가 내 눈 앞에서 꼬물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데 감정선이 딱 그 경이로움 정도에만 도달하면 좋겠으나 문제는 그 이상을 초월해 '두려움' 지수까지 과도하게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 황홀하지만 그 신기한 감정을 모두 이고 져야 하는 '엄마'의 위치에 놓이고 보니, 만지면 부서질까, 오래 보면 닳을까, 모든 게 조심스럽기만 했다.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기 표정이 울 것 같이 변해버리면 나도 덩달아 앓는 소리를 냈으니... "아기가 울 것 같아요!"
모든 아기는 '울면서' 이야기해
울 것 같은 아기의 얼굴에 '어떡해 어떡해. 울지 마'를 연발하던 나에게 던진 간호사의 한 마디. 아차차, 그렇지. 아기는 당연히 우는 거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울음소리' 단 하나인데 울지 말라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나는 초보 엄마. 태어난 지 단 몇 시간밖에 안된 아기를 간호사, 의사도 없이, 온전히 이 '초보 엄마'에게 맡겨두시니 '사랑스럽고 예뻐 죽겠는' 감정을 떠나서 '무섭고 떨리는 감정'부터 앞섰다. 신생아를 능숙하게 잘 다루시는 분께 맡겨두면 이토록 불안하고 초조하진 않을 텐데. 어쩌면 '신생아실'이 훨씬 안전한 선택일지도 몰라! 이렇게 서툰 엄마가 아기랑 24시간 같이 있어도 되는 건가? 잠깐 예쁜 아기 못보더라도 전문가들이 곁에 상주해 주셔야 비로소 단단히 체한듯한 두려움이 사라질 것 같았던 시간들. 이런저런 걱정들이 밀물처럼 세차게 다가오면서 처음으로 모자동실 시스템이 마냥 겁나기 시작했던 시점.
아침에 출산한 지라, 분만실을 떠나 일반 병동으로 옮기고 나면 조금은 낮잠을 청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기대는 와장창. 생후 1일이 채 되지 않은 신생아와 한 방을 쓴다는 것은 얕은 잠 기운마저 바싹 말려버릴 만큼 건조하고 팍팍한 '겁'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잠 한숨은커녕 '아기 상태가 괜찮은지' 시시각각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피느라 가뜩이나 건조했던 두 눈이 불꽃 겹겹이 입고 타들어갈 듯이 메말라왔다. 내 거인 듯, 내 것 아닌 내 거 같은 너. 정말 나의 아기가 맞지? 연신 감탄하면서도 혹여 뭐라도 실수할까 봐 긴장감을 빳빳하게 유지해야 했던,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던 4월의 한 오후, 매사추세츠 주 한 산부인과 병원의 모자동실 풍경.
아기 검사해야 할 게 있는데
잠깐 데려가도 될까?
당연하죠. 데려가세요.
매 순간 떨리고 불안했던 1분 1초. 의료진이 검사할 게 있다며 방문을 두드릴 때면, 차라리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의료진을 믿습니다. 편안히 데려가 주세요.", “물론이죠. 천천히 검사 마치고 데려와 주세요.” 같이있음이 크나큰 미덕인 모자동실일진대, 누군가 잠시 데려가도 되겠냐는 요청이 반갑기만했던 아이러니!
초보 엄마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기 눈치를 살피고 있던 찰나, 아기를 달래고 만지는 전문가의 능숙한 손길이 있는 곳이라면 얼마든지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던 순간순간들. 나 본인의 손길보다 그 누군가의 손길, 능수능란 아기를 돌보는 전문가의 몸짓이 너무나도 간절했던 모자동실의 비애라고 해두자.
아기는 어떠했을까. 서툰 엄마의 손길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 병원, 신생아실 따로 없나요?" 속으로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지, 아무리 그래도 남보다는 열 달 남짓 느꼈던 엄마의 호흡을 곁에서 조금이라도 더 느끼는 게 흡족했을지.
"초보 엄마가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모자동실이 당연한 이 곳이라 미안해."
생후 1일, 2일.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조금씩 내 손길도 능숙함을 덧입어야 할 텐데. 이런저런 스킬이 늘기는커녕 반복되는 실수들로 아기도 나도 자꾸만 지치기만 하는 건 아닐까. 걱정과 불안의 환상 콜라보레이션. 모자동실마저 이리도 겁이 나서 '간호사 호출 버튼'을 내내 만지작 거리고 있던 입원 기간이었다. 집에 돌아가서 진정 '모자'만의 시간이 주어질 때 나는 이렇게나 단단하게 걸쳐 입은 '겁'이라는 녀석을 훌훌 벗어 시원스레 털어낼 수 있는 것일지. 너도 나도 서로가 서로를 믿고 미소 짓는 그 날의 기적은 곧 찾아올 수 있을까. 단둘 이만 있어도 편안해질 수 있는 그 마법 같은 타이밍을 꿈꿔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