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산, 그 후 (5)
몇 달 전 처음 느꼈던 태동의 꿀렁거림만큼이나 인상 깊은 순간이 있었다. 새벽에 잠이 깬 아기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뭔가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칭얼거리려고 하던 그 무렵, 내 손목을 붙들고서야 드디어 '쌔근쌔근' 잠들게 된 것. 내 손목을 만지작 거리더니 아예 손목을 둥그렇게 끌어 안아버렸다. 코알라가 나무기둥에 찰싹 달라붙어서 온 몸을 대고 부비는 장면이 그려졌다. 판다가 나뭇가지를 감싸 안고 쉴 새 없이 풀을 냠냠거리는 것처럼 두 눈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고 느꼈다.
좋아진 노래를 자꾸만 곱씹어서 듣는 것처럼 중독성 있던 그 장면. 아기의 작은 두 팔로 내 손목을 감싸 안은 자세는 그로부터 2시간가량 이어졌다. 온 힘을 다해 나도 그 정지 자세를 유지하려 애썼다. 살과 살이 맞닿는 그 보드라운 느낌이 싫지 않았기에. 그냥 맞닿는 게 아니라 작은 손이 붙든 그 손의 작은 압력이 그 보드라움을 증폭시켰다.
바로 이거지, 나와 하나가 된 느낌.
탯줄이라는 연결고리는 끊어졌지만 보이지 않는 끈이 내 손목과 아기의 작은 두 손을 칭칭 감아 연결해준 순간 같았달까. 당신이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가지 말아 달라고 애써 나를 붙드는 것 같았던 작은 몸짓. 몸을 배배 꼬며 울음을 터뜨릴까 말까 보채려던 순간에 필요했던 건 보송보송한 새 기저귀도, 병에 따끈하게 꽉 들어찬 분유도 아니었다. 나와 살을 맞대고 촉각을 공유하고 싶다는 소소한 소망. 너와 내가 맞닿는 그 느낌에서 찾아드는 안도감과 여유. 어쩌면 아기의 손과 발이 간헐적으로 내 배를 두드렸던 임신 중의 그 순간들보다 더 절실했고 적극적이었다. 연약하게 붙든 힘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끈덕지게 밀도를 더해갔다.
엄마의 팔 안쪽 살결을 좋아한다. 엄마랑 손을 잡고 쇼핑을 할 때나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며 길가에 섰을 때, 늘 같은 위치에 내 손을 가져다 대고 오랜 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리곤 했다. 연인도 친구도 아닌 '엄마'여야 했다. 마음이 서늘하게 바람 든 듯이 힘든 것 같은 날엔 그러한 무의식의 손짓이 더 절실해졌던 것 같다. 엄마의 팔을 만지작거리면 마음이 '안 좋은 쪽으로' 둥당거리며 요동치던 날, 그러한 태풍이 조금 잠잠해지곤 했다. 엄마의 살갗에 손을 얹으면 그 어떤 언어가 없어도 그 어떤 메시지들이 자연 흡수되곤 한다. '힘들었지. 수고했다. 괜찮다. 정말 다 괜찮다' 류의 말들이 성대의 울림과 달팽이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내 마음에 스며든다.
아기가 나를 찾는 듯한, 그러니까 '나를 원한다'는 몸짓을 전해올수록, 그와 비슷한 느낌이 마음에 찬찬히 찾아든다. 아기가 내 손을 붙들고 싶어 할수록 나 또한 엄마와 맞댔던 예전의 그 촉감을 마음 안에 둥게 둥게 떠올려 본다. 엄마의 팔에 마음을 부빌 때면 온갖 쓸데없는 걱정이 그 순간만큼은 녹아내렸고 힘든 시간의 버거움이 샅샅이 흩어졌으니까. 정말 뭐든 '괜찮아지는' 힘을 지니고 있는 듯했으니까. 밖에서 서럽거나 억울한 일을 겪었다고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던 날, 엄마의 팔 안쪽 온기는 한껏 얼어서 살이 부르틀 것 같은 내 하루를 담요처럼 덮어주었다. 엄마의 살갗을 연하게 꼬집듯이 쥐고 시간을 흘려보내면 차갑게 식은 마음의 온도가 서서히 수은주를 올렸다.
내 아기도 그러했을까. 태어난 지 30여 일차, 코로나바이러스고 뭐고 어지럽게 돌아가는 이 세상 속에 발을 디딘 게 좀 억울했어야지. 아직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고 소리치고 싶던 순간. 뭐가 맘처럼 되지는 않고 그런데 우연히 입을 댄 분유 라테는 맛이 좋기만 하고, 이러나저러나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는 없고...그래서 발버둥 치고 싶었던 그 순간에 엄마의 손목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든든한 지지대가 되었던 거니? 끌어안으면서 그 작은 고통이 조금은 그 수치를 낮췄을 거라고 믿어. 손목에서 느껴지는 연한 살의 보드라움이 앞으로 더없이 거칠어져 갈 너의 호흡에 미리 여유를 선물했을 거라고 생각해볼게.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네가 내 손목을 끌어안고 쪽잠을 청하듯, 나 역시 엄마 그 특유의 온도와 촉감이 그리운 요즘의 순간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카페에서 달콤한 간식을 잔뜩 주문해 두고 도란도란 수다를 떠는 주말의 일상들, 밤늦도록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두고 같이 깔깔대는 그 유쾌함의 기억들. 별 것 아닌 소소한 하루를 엄마와 틈틈이 나눌 수만 있다면 타국에서 왕왕 느끼는 퍽퍽한 순간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잊히기 쉬울 텐데. 팔 안쪽 살을 매만지듯이 따뜻해지는 건 별일도 아닐 텐데... 산책과 간식, 공부와 관리가 필요한 엄마에게는 무엇보다 '엄마'가 필요해. 너와 살을 맞대면 끈으로 연결된 것만 같은 그 순간에 나도 그 포근한 기억들을 되짚어 볼게. 그러면서 내 필요함과 너의 절실함을 휘휘 섞어 오늘 밤도 편안해져 보자꾸나. 그렇게 '힐링'하는 하루를 만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