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인스타그램을 열었더니 한창 유치원 입학설명회 시즌이 시작된다고들 한다. 대학입학설명회도 아니고, 입시학원 설명회도 아니고, '뭐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해!' 싶지만 아이를 낳아보니 아이가 세상 처음 맞닦뜨리는 그 모든 순간이 어땠는지에 따라 참 많은 것들이 좌우된다. 특히 그게 일 년 내내 다녀야 할 기관이라면 더더욱이 그렇다. 울지 않고 잘 들어가 줘야 그날의 모닝커피가 달콤할 수 있고 베이글 한 조각 크림치즈 얹어 먹을 여유도 생긴다.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아이에게 뜨악한 포인트 무언가가 생긴다면 엄마는 전날 한밤중부터 좌불안석일 수밖에. 내일은 별일 없을까, 우리 애 내일은 별 탈 없이 지내줄까, 선생님은 어떠시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가 한숨과 뒤범벅되어 내일의 다크서클을 미리 만들어간다.
인생에 선택지란, 참 끝이 없다. 내 대학교 어디 지원할지 고민 치열하게 했고, 입사할 직장 고르는 데도 한 열정 다해 '선택'잘 받고 싶어서 '선택'이라는 걸 했었지 않나. 아이를 낳고 보니 다시 선택의 전쟁이다. 소위 '영유'에 빨리 넣을 것인지, 일반 유치원으로 진학시킬 것인지, 아니면 지금 잘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서 편안하게 상급반에 진학할 것인지, 엄마들은 이 정보 저 정보 기웃거리며 내 선택이 잘한 것일지에 대해 끊임없이 확신을 얻고 싶다. 여기 괜찮다더라? 오올, 역시 내 판단이 옳았네! 여기 이런 거 좀 별로라던데? 저 엄마 말 너무 생각 없이 하네!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또 '선택'해 가며 흘려듣고 내 아이 다닐 곳이 어느 정도 괜찮은 곳이기를 바란다. '흠... 이 정도면 괜찮은 선택이었어!'
어린이집 통합반 VS 일반반?
병설유치원 특수반?
신경다양성 아이가 있다면, 한 가지를 더 치밀하게 고려한다. '내 아이 다닐 곳이 어느 정도 괜찮은 곳'이길 바라야 하지만 더불어 그곳에 매일 발을 디딜 내 아이가 정말 괜찮아야 한다. 감각적으로든, 동선상으로든 특별한 '꼬임'이 없길 바라는 게 필수. 유독 감각이 예민한 경우가 많은 신경다양성 세상의 아이들. 첫인상부터 꼬이는 감각요소가 하나라도 있다면, 적응기간이 쉬울 리 없다. 애도 우는데 엄마도 엉엉 운다. 실제로 아이를 특수학급에 보냈는데 다들 예민한 친구들만 모여있다 보니, 서로가 지르는 소리에 서로가 예민해져 여기저기 온천수 터지듯 울음이 번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수반이 아닌, 통합반도 하나의 선택지다. 일반반 친구들과 같은 환경에서 어울리되, 특수교사의 지원을 밀도 있게 받을 수 있는 통합학급은 많은 엄마들이 희망하지만 그만큼 지원해서 입소승인받기까지의 경쟁이 치열하다. 들어간다고 들어간다고 해서 미션클리어는 또 아님 주의. "우리 OO는 공격성이 없어서 참 다행이에요"라는 말을 기관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 순간의 '나'는 다행인데, 신경다양성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참 '다행이 아니구나' 싶다. 신경다양성 아이 스스로도 통제하기 힘든 그 어떤 순간을, 우리 모두의 '불행'으로 생각하는 시선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다행이면서도 다행히 아닌 말을, 기관으로부터 들었을 때 나의 기분은 참 무거웠다. 장애통합반은 존재하지만 신경다양성을 향한 통합의 시선은 없는 듯한 공간들이 답답했다. 그런데 그런 공간이 당연하게도 너무 많아서, 재건축을 해야 할지 리모델링을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달까.
신경다양성을 향한 시선만큼은 30년 묵은 재건축 사안을 꺼내드는 듯했다. 다들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는 하지만, 딱히 수년 안에 재건축될 것 같지 않은 느낌? 장애 꼬리표가 신경다양성의 언어로 바뀌는 데는 앞으로 수십 년의 해묵은 탁상공론이 이어져도 딱히 달라질 것 같지 않은 게, 마치 재건축 이슈와 다를 게 없었다.
별이는 너희들이 놀란 거에 비해
조금 더 놀랐어
별이는 빛, 소리, 냄새 같은 것에
훨씬 더 예민하거든.
EBS <딩동댕 유치원>에는 자폐스펙트럼 아동 '별이'가 등장한다. 작년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이 예고되면서 누군가는 '오올!' 박수를 보냈고, 누군가는 우려의 시선을 덧댔다. 어떤 엄마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감정에 이입해 울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지금이라도 이런 캐릭터가 나와서 정말 다행이라고도 했고... 해외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신경다양성 캐릭터를 출연시켰다는데 한국은 너무 늦었다고 질타하는 시선도 있었다. (실제로 미국 PBS 어린이 TV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에는 줄리아라는 이름의 자폐아동 인형이 등장해 왔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여야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별이. 다른 캐릭터에 비해 몇 배의 시간을 더 들여 자문을 구하고 조심스럽게 디렉팅 한다고 하니 '별이'가 탄생에 이르기까지 제작진이 땀 흘린 시간은 참 고된 만큼 값지다. 실제로 제작진 인터뷰를 보니 그 노력이 참 고맙고 고맙다.
별이가 등장하는 회차는 1.5에서 2배 정도 시간이 더 걸려요. 마음대로 원고를 쓰지 못하고 자문을 받아야 합니다. (중략) 자문은 두 분께 받습니다. 특수학교 교장 선생님은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시기 때문에 아이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별이 대사 하나하나까지 다 봐주시죠. 정신의학과 교수님은 의학적 차원의 조언을 해줍니다. 지능발달 수준과 자폐 수준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 대사와 행동을 하는 게 적절한지 의학적으로 진단해 주시죠.
[오마이뉴스] '자폐아동' 별이 만든 <딩동댕유치원> PD 울컥하게 한 사연
2023. 10. 30 / https://omn.kr/265rg
* 스페셜 ep1화 다시보기 : https://m.youtube.com/watch?v=BG0tTkAg3J8
별이는 자동차를 좋아하고 각종 차의 이름은 천재적으로 꿰고 있다. 차를 꼼꼼히 나열할 때, 차를 반복해서 이야기할 때 친구들은 의아한 듯 갸우뚱거리다가, 결국 '대단하다'라고 감탄한다. 그 누구도 "쟤 이상하다"라고 다른 곳으로 회피하지 않는 것. 그럴 수 있는 데는 딩동선생님의 따뜻한 이끎과 소통이 있다. 별이가 텐트럼을 보일 때, 아이들은 당황하지만 선생님은 차분하게 별이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설명한다. 별이는 누구보다 감각이 예민할 수 있는 아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기다려줘야 한다고.
맴맴 매미소리가 더 크게
짹짹 새소리가 더 크게
세상 모든 소리가 더 크게
그럴 땐 기다려줘
별이 느낀 소리가 작아질 때까지
<딩동댕 유치원>이 끌어안는 이야기가 너무 포근해서 때때로 별이의 등장만을 기다릴 때가 있다. (가끔은 다 큰 어른도 아이 프로그램이 마냥 재밌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적절한 대답을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별이를 끄덕여줄 수 있는 친구들, 시끄러운 소리에 어쩔 줄 몰라하는 별이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친구들, 별이의 존재가 어렵게 느껴질 때 선생님의 설명에 차분히 귀 기울일 수 있는 친구들. 별이가 잘하는 걸 먼저 봐주면서 그와의 소통에 '일시정지'나 '전원 끄기' 버튼을 극단적으로 누르지 않는 그 분위기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그리고 존경스럽다.
물론 우리의 현실 안에도 '통합반'은 있다. 일반 아동과 신경 다양성 아동이 함께하는 공간, 그 속에서 어울림을 배우면서도 특수교사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긴밀히 도움받을 수 있는 배움 환경. 하지만 되묻게 되는 질문은 하나. "그러한 통합은 '따뜻했던가'"
별이랑 놀려면
별이 생각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내년에 어디 보내실 거예요?" 기관마다의 입학설명회 시즌이 찾아들면서 함께 떠오르는 물음표. 아이가 지금의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 준다면 '잔류'할 것이고, 지금의 공간에서 께름칙한 눈총을 받고 있다면 '전원'도 고려할 것이며, 운 좋게 '통합반' 자리가 난다면 장애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일정시간 함께 머물 수 있는 그곳을 택할 것이다. 일찍이 아이에게 긴밀한 지원이 필요하다면 특수교육대상자가 되어 특수반 진학도 생각할 테고. 영어유치원, 일반유치원, 어린이집, 숲학교, 놀이학교 등등, 아이의 발걸음이 향할 공간 선택지가 날이 갈수록 다채로워지는 시대. 신경다양성 아이가 향할 공간도, 그 선택지가 한 뼘 더 확장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들 친구 엄마가 물어본다면 나는 감히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현실판이 있기만 하다면 "저희는 딩동댕유치원에 입학할게요."
* 스페셜 ep2화 다시보기 : https://youtu.be/1SfkL0k0idY?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