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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현 Oct 23. 2024

선 넘는 플러팅, 혹은 나쁜 남자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2년 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나와 이 드라마의 인연은 아주 깊다. 내가 둘째를 출산했던 날은 이 드라마의 첫 방영일이었다. (오올!) 덕분에 산후조리원에 머물며 실컷 우영우의 다음화를 기다렸더랬지. 한창 인기가 식을 줄 모르도록 뜨끈뜨끈 할 때 본방사수 이벤트에 참여했는데, 덕분에 운 좋게 내 키 만 한 고래 인형을 제작진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오올, 소리질뤄어!) 우리 집 느린 아이 첫째에 대한 사연을 끼적이며 첫 방영일에 태어난 우리 집 둘째의 기가 막힌 인연스토리를 조미료처럼 팍팍뿌렸줬던 바, 당첨은 단연 내꺼일 거라고 슬그머니 예상했더랬다. 집으로 엄청난 크기의 고래가 특대형 사이즈의 택배상자에 담겨 배달될 때의 기분이란!


드라마 속 우영우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야말로 다각도다. 법전을 통째로 씹어먹을 만큼 달달 외워버리는 천재적 특기에 주목하는 이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자폐스펙트럼 장애인데 저렇게까지 사회생활이 가능하다고오오? "말도 안 돼" 시선을 덧붙이는 이도 있었다. 차가운 줄 알았다가 다시 보니 친절한 상사, 그리고 따뜻한 동료애를 그려준 친구 변호사의 존재는 '아, 이래서 드라마지!' 싶도록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물음표, 느낌표를 번갈아 백만 개씩 쥐어준 요소가 있었으니, 그거슨 바로 '연애' 스토리였다. 자기 스스로 '자폐스펙트럼'이라고 소개했던 우영우, 바로 그의 연애.


신경다양성 아이들도
연애할 수 있을까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그 이후 '썸'이 가능할까


종종 아이의 연애를 상상해 볼 때가 있다. 소위 '오늘부터 1일' 모드에 돌입하려면 일단 첫 만남, 데이트를 두어 번은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처음 데이트 하려거늘, 너도 나도 좋은 레스토랑쯤은 되어야 할 텐데,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라면 몇 차례의 연습이 필요한 너에게 첫 번째 데이트를 위한 모의연습이 구운몽까지는 아니더라도 예닐곱 번쯤은 반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7화글 참고 : 구운몽 별명 속 숨은 비밀 ) 딱딱하고 바삭감 식감을 좋아하는 너에게 소개팅녀가 부들부들 야들야들한 파스타를 시키자고 제안하면 너는 잠자코 웃으며 끄덕일 수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밥은 먹는데, 간간이 재밌으라고 던지는 유머를 너는 대문자로 T로 다 받으면 어떡하지? 와아, 내가 식은땀이 다 난다. 으이고, 정말 어떡하지! 우리 아들 연애할 수 있을까.


오늘 오랜만에 만난 반 친구를
꼭 껴안아 줬어요.


아들은 선을 잘 넘는다. 아마 프로 선 넘기 상이 있다면 이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내 아들 꺼라고 일단 '찜'. 그래 한번 껴안아주면 '오, 이것이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의 서양식 감성이군. 굿!' 하겠다. 한번이면 괜찮아. 그런데 친구 껴안기에 꽂히면 조금 많이 껴안아준다. (정말이지 시샘이 나서 이 단락을 쓰는 것은 아님) 여자친구들에게 주저 없이 직진본능을 발휘할 때가 잦다. 맥락과 타이밍을 살피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아지금 이 순간 딱 무엇을 하며 이 여백을 아낌없이 채울지에 대해 마냥 모호해지는 것이다. 역시 구체적인 사례가 있어야 어떤 느낌인지 아시기 편하시리라. '반가우면' 덥석 친구를 끌어안고, '기분이 좋으면' 또 친구에게 황소처럼 들이대며 점프점프! 환희를 표현한다. 맥락이 없이 기분이 좋으면 낮잠 이불에서 자고 있는 친구 위로 올라타고 그 업텐션을 여보란 듯이 뿜어낸다. 이러니 내가 또 프로 사과러가 되는 거 아니겠냐고. "친구, 놀랐겠다! 미안해" 관심이란 거, 그거 적당히 풀어내고 기분 좋을 만큼의 짧고 굵은 눈 맞춤을 시도하면 되는 건데, 우리 애는 그게 힘들다. 그러니 함께 해주시는 선생님들께도 자꾸 경고 카드를 받을 수밖에. "아휴, 이러면 친구가 놀랄 수 있어"


"플러팅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살살 좀 접근해 봐"


미래로 휙 넘어가서 아이 친구들과 연애 뒷이야기 현장에 살짝 귀 기울이면 이런 얘기 꼭 나올 것 같다. "걔, 너무 플러팅 과한 거 아냐?", "아우, 적당히 좀 하지!" 세기를 불문하고 연애라는 건 '기다림'에 묘미가 있지 아니하던가. 상대방을 '나쁘게' 가슴 졸이게 하란 얘기가 아니다. 설레며 기다려도 보고, 내 설렘이 진짜 몇날며칠이 지나도 변함없는 그 두근거림이 맞는 건지 '내 마음을' 재보기도 해야 한다. 좋은 감정을 현장에서 방방 뜨며 표현해 내지 않으면 못 참는 나의 아이는 새콤달콤 쫄깃쫄깃한 연애를 하기엔 '이거 이거, 너무 안 타고 난 거 아닌가' 얼굴이 빨개지는 건 나의 몫이다. 아주 사알짝 씁쓸해지면서도 또 얼토당토 시답지 않은 결말에 씨익 웃어버리는 건 안 비밀.  "연애 못하면 엄마랑 아주 꼭 붙어서 평생 살지 뭐." 이렇게 읊조릴 때 남편이 가장 어이없어하는 건 좀 비밀? (왜왜, 엄마랑 평생 꼭 붙어살면 안돼?)


야아, 완전 나쁜 남자네

자, 여기서 잠깐 퀴즈. 이렇게 과한 플러팅을 폭발적으로 한 같은 반 남자친구가 어느 날 길에서 나를 모른 척하고 쓰윽 지나갈 때의 마음은? 1번, "쟤 뭐야? 흥". 2번, "음? 오늘 왜 내 인사 안 받아주지?". 1번과 2번의 공통점은 일단 '자꾸 그 아이가 생각난다"는데 있다. 이상, 내 아들의 실제 이야기 되시겠다. 같은 교실 안에서는 친구 좋다고 그렇게나 마음 안 숨기고 표현을 해오시더니, 밖에서는 그 친구가 손을 흔들면 딱히 반응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야아! 완전 나쁜 남자네."


이렇게나 '밀땅'을 할 수 있는 애였어? 사실 신경다양성 아이의 경우, 자주 생길 수 있는 일일 수 있다. 구조와 환경이 바뀌면 둘러싼 생각의 회로가 촤라라라 바뀌는 아이다 보니, 아마 '친구'라는 자극과 그에 대해 반응해야 하는 타이밍, 행동을 놓친 거다. 과한 플러팅하다가, 길에서 모른 척하기 연애기술이 범벅되면 세기의 밀땅남 되시겠는데?


친구가 인사할 무렵, 나의 아이는 무얼하느냐고? 나는 잘 보이지도 않는 깨알만 한 비행기를 아이는 돋보기라도 장착한 듯 심드렁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흔적에 몰두할 때가 있다. 바닥의 모래 알갱이가 난 다 똑같아 보이는데 모양이 천 개쯤은 되는 듯,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있다. "야야, 친구가 인사했잖아." 이런 친구가 괘씸하기도 할 테고, 의아하기도 할 테고, 과연 내 인사는 왜 안 받은 걸까... 생각하며 결국에 등을 돌릴 것만 같은 내 아이의 친구들. 오해의 전쟁을 종식시키고자! 큰 사명을 안고 종종걸음으로 친구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아고, 친구가 오늘 다른 생각을 하나 봐, 아줌마가 미안해! 다음에는 더 반갑게 인사할게!"




아들의 그 언젠가의 연애를 떠올리자면, 자연스레 아이유의 노래를 생각한다. 상대방도 괜찮은 건지 그 '마음'을 읽어야 하고, 상대방의 마음은 내 마음과 다를 수 있다는, 그러니까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 세계가 '팔레트'처럼 다채로울 수 있음을 끄덕여야겠지. '너랑 나'가 세상에서 둘도 없는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다면, 가끔은 예민한 감각도, 집착도 아아주 살짝은 내려둘 수는 있을까나. 너의 스무 살 봄날에 '봄, 사랑, 벚꽃 말고'류의 썸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노래 들으며 설렐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난다면 참 좋겠다. 물론 '사랑이 잘' 안된다고 한탄하는 모습도, 문 쾅 닫고 엉엉 울어버리는 모습도 나는 모른 척해줄 준비가 돼 있지.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가을아침' 특유의 상쾌함으로 숨을 고르며 또 다른 연애를 생각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someday'에 도착할 그날을 엄마는 고요히 상상해 본다. 어머, 그리하여 오늘은 플레이리스트는 아이의 연애스토리로 완성. 오늘은 이 일곱 곡에 빠져 나의 육아도, 아들의 미래 사랑도 응원해 봐야지.


1. 아이유 <마음> 
2. 아이유 (feat. 지드래곤) <팔레트>
3. 아이유 <너랑 나>
4. 하이포, 아이유 <봄, 사랑, 벚꽃 말고>
5. 오혁, 아이유 <사랑이 잘> 
6. 아이유 <가을 아침> 
7. 아이유 <Someday>
그 언젠가 <가을 아침> 들으며 너의 연인과 설렐 수 있기를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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