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수강신청을 여전히 하고 있다. 9시 정각 '땡' 할 때 최대한 신촌 등지 PC방에 자리 잡고 재빨리 클릭질을 해대던 20대 초반시절이 있었다. 내일모레 마흔인데 이걸 여전히 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내 피부상태만 확 달라졌지, 여전히 특정 시간에 알람을 맞춰두고 '원하는 걸 신청 못할까 봐' 두근두근 조마조마 쿵쾅쿵쾅 하는 가슴 한켠을 꽉 붙잡는다. '자, 클릭질할 타이밍이야', 아니 이젠 '터치질'을 하는 시간이지! 이거 이거 대학생 때 원하는 수업 듣겠다고 인터넷 빠르다고 소문난 곳 찾아 찾아다닌 게 20여 년 전인데, 아직도 원하는 과목 듣겠다고 참 요란법석 오전을 보내고 있다. 겨울학기 백화점 문화센터 (이하 문센) 의 수강신청날이니까! 아이 문센보내려면 오늘 오전은 허투루 보내면 안 되는 특명을 받은 셈이다.
일단 그 어떤 볼멘소리가 튀어나와도 '할 건 해야 한다'. 영유아 체육수업 트니트니든, 내 딸 최애 발레수업이 됐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수업 픽 했다면, 행동으로 즉각 옮겨 등록부터 해야 한다. '들어? 말아?' 잠깐의 망설임 사이에 내 아이의 수강희망 강좌는 샤워부스 물 빠지듯이 쫙쫙 빠져나가버리니까. "오오, 옳거니! 그렇지!" 눈을 뱅글뱅글 돌려가며 필사적으로 터치터치! 잡았다.
문센에 집착하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미국에서 코로나 심할 때, 그러니까 당시 대통령 트럼프가 'very very painful week'라 될 거라고 했던 주간 첫째를 낳았더니, 아이 생후 9개월에 이르기까지 병원을 오가는 일 외에는 미국에서 집콕만 했다. 뭐 코로나 극심기가 아니었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미국에는 그렇다 할 '문센'이 없다. 도서관의 키즈이벤트나, 지역구 내 일시적인 행사야 간간이 있더라도 12주 과정 촘촘하게 짜인 영유아용 프로그램은 한국에서나 말끔하고 반드르르하게 경험할 수 있는 특권 아니던가.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지' 첫째 때 못 경험한 문센, 그때의 한스러움을 몽땅 몰아 풀어보겠다는 듯, 최선을 다해 둘째의 문센 클래스를 골라 담는다.
문센에 가는 아이
VS
문센에 못 가는 아이
엄마의 욕구가 이리도 강렬할진대,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둘째 수업을 잡으려는 수강신청 초단위 터치력은 날로 상승곡선인데, 정작 신경다양성 첫째는 문센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코로나 시기와 소위 '문센 황금기'인 영유아 시절이 겹친 탓도 있고, 미국을 오가느라 수업을 들을 타이밍을 잡지 못했던 것도 물론 팩트. 하지만 자기의 패턴과 루틴이 확고한 아들을 데리고 40분 내내 '노심초사'할 자신이 없다. 슬그머니 터치질을 과감히 내려두는 이유는 결국 내 탓.
동요를 틀어주면 씬나서 우리 애 흥이 과하게 올라올 텐데, 그러다가 옆 친구들 영역을 수업 내내 방해할까 봐 걱정, 제자리 앉기보다는 구석구석 탐구하고 다닐 텐데, 그 산만함 제지 못한다고 다른 엄마들 따가운 눈총 받기 싫은 것도 한몫. 선생님도 난감하시겠지. 아이의 돌발행동을 제지는 해야겠는데, 또 이 엄마 저 엄마 눈치도 살펴야 하니까. 이런저런 계산을 하다 보면 때론 그냥 안 하고 마는 게 최적의 수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우, 그냥 안 하고 말지
안 다녀도 잘 크더라
느린 발달의 아이가 거의 찾지 않을 문화센터의 클래스는 '누구도 제한하지 않았지만' 엄마에게는 이렇게 '장벽'이 된다. 신경다양성 아이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는데, 엄마아빠 스스로 까무룩 ‘가보고 싶은’ 마음을 꼬깃꼬깃 접어버리고 만다. 가면 마음 지치고 올 게 뻔한 그림이라서 그 그림은 되도록 안 보고 싶은 거다. 오라고 손 뻗어주면 오호! 한번 더 볼 텐데, 손 내밈이 없으면 용기내기도 쉽지 않다.
고백하건대, 첫째에게 마냥 미안했던 토요일이 있었다. 동생의 문센 발레수업 특강이 있던 날, 감히 첫째의 자리까진 예약하지 못했다. 첫째도 동생이 늘 배워오던 발레에 관심이 많았건만! 같이 듣게 하면 아이들의 '흥미'에는 '딱'일 수도 있었을 날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내 판단은 '딱' 내려지지 않았던 날, 문센이라는 클래스 환경이 낯설 게 분명한 첫째를 생각하면 용기나지 않았던 내 마음을 이제야 슬쩍 꺼내둔다.
동생이 문센 특강에 참여하는 동안, 첫째는 옆에 있는 키즈카페에서 '네 뜻대로' 맘껏 시간을 보내라고 이용권을 끊어주었다. 낯선 클래스를 휘적휘적 가로질러 걸어 다니거나 혹은 음악소리가 평소와 볼륨이 달라서 흥분하거나 혹은 불안해하거나, 그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몰라서 아이보다 내가 더 불안했던 셈이다. 그냥 아무 눈치 보지 않고 "그냥, 해보는 거지" 함께 손잡고 나설 수도 있었겠으나, 나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여전히 신경다양성 세계를 불편하게 바라볼 사람들이 두 눈에 먼저 담긴다. 여전히 나는 그런 것들이 신경 쓰인다. 내 아이를 불편하게 바라볼 날 선 시선들이 많이 차갑다. 그 차가움이 아이한테 닿을까 봐 늘 발을 동동 구른다.
괜찮아요,
웰컴 신경다양성 존입니다
웰컴키즈존이 있듯이, 웰컴! 신경다양성 반겨주는 곳 있다면 득달같이 달려가보겠노라고 마음으로만 생각해 본다. 먼저 오라고, 앞서서 손짓해 주면 눈물겹게 신이 날 것만 같다. 아마 머리로 손발로 이걸 해내는 공간은 정말이지 근사하고 대단할 거라고 미리 설레보는 마음. 웰컴키즈존이라는 푯말만 봐도 아이랑 들어가는 마음이 한결 푸근해지는 법이어서 그 사장님 마인드를 오롯이 상상해 보게 되지 않나. 사장님도 아이를 키우시나 보다, 아이를 좋아하시나 보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하시나 보다 등등.
웰컴 신경다양성 존은 어떨까. 그곳을 운영하는 그분은 어떤 분일까. 그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은 어떤 눈빛을 하고 있을까? 물음표가 뭉게뭉게 떠오르는 오후. 그 공간을 향한 진심이 그 언젠가는 꼭 등장해 줄 것만 같아서 한 없이 설레보는 그런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