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덕후의 카페 사용 설명서
퇴사한 다음날, 나는 베이킹 클래스에 출석했다. 카페놀이가 취미인 '빵순이' 다운 선택. 이른 아침 수업이 아니었으니 천만다행, 설마설마했으나 정말 못 일어나서 못 갈 뻔했잖아. 11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으니 곱고 단정하게 소위 '새댁 차림새'로 가기란 진작에 포기. 어제 입었던 옷을 주섬주섬 또다시 껴입고 찐한 커피 가장 큰 사이즈를 테이크 아웃해서 총총걸음으로 공방에 도착했다. 오늘 나의 심심한 하루에 쫄깃한 식감을 더해 줄 공간.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여야 하지만 꼭 같은 크기, 같은 모양새가 아니어도 충분히 맛있다고 끄덕일 수 있는 너그러운 영역. 딱딱하지는 않지만 적당한 긴장감은 지니고 있길 바랐던 나에게 퇴사 후 맞이하는 첫날, 그 아침의 선택은 '베이킹 클래스'가 제격이었다.
비쌀 만하네요.
이렇게 까다로울 줄 몰랐어요
언제 어떤 손놀림을 더할 지에 따라서 시시각각 제 운명을 결정짓는 마카롱 '꼬끄' (햄버거에 비유하자면 겉면의 빵과 같은 표면 두 쪽). 늘 날개 달고 예쁘게 피어올랐으면 좋겠는데 내 맘처럼 나와주질 않는 야속한 '삐에' (마카롱 가장자리 오돌토돌하게 돌출된 부분). 수많은 베이킹 아이템 중에서도 마카롱은 그 만드는 '규칙'에 대하여 섬세한 집중력을 기울여야 하는 고난도 아이템들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그대로 레시피를 따라가도 이상하게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니, 오죽하면 마카롱에 자음 하나 더해서 '망카롱'이라는 귀엽고 억울한 별칭도 빈번이 자주 쓰이고 있을까.
때론 따박따박 군소리 없이 지켜야만 하는, 지켜져야 하는 이유 없는 규칙들이 짜증스럽다가도 '규칙'이 정작 사라지면 나 스스로가 '망카롱'의 자태가 될까 봐서 조마조마한 나날들. 그게 바로 퇴사자가 마주하는 퇴사 이후의 나날들. 같은 색깔, 개성 없이 똑같은 꼬끄의 일정한 원주율에서는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다고 저 멀리 망카롱의 대열로 쫓겨가고 싶지는 않아서 부단히도 나만의 규칙을 찾아 헤매는, 그러고 싶지 않다가도 결국엔 내 규칙을 찾아내고야마는!
퇴사 후 맞이한 첫날, 나는 그러한 심정으로 귤색 마카롱을 빚어냈다. 겨울이 자아내는 짙은 회색빛 속 날씨에서 청초히 발랄함을 더하는 빛깔이었다. 대충 놔두었더라도 적당히 흘러갔을 그 하루를 기어코 핸드믹서로 휘핑하고, 아몬드가루를 체에 탁탁 쳐내며 정갈하게 톡 떨어지기를 희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속삭이는 류의 책장을 넘기다가 결국에는 '습관의 힘'을 강조하는 류의 도서로 손이 옮겨가는 것마냥, 적당히 뭉쳐져서 뭐라도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동그란 반죽 같은 하루를 난 뭐라도 특별하게 만들어내고 싶었던 걸까. 이왕이면 핫하다는 디저트로, 웬만하면 잘 팔릴 것 같이 대단히도 앙증맞은 모양새로.
보스턴에서 빵집이라도 차리려고?
아니요,
제가 다 먹으려고요
우스갯소리로 지인들로부터 이런 말 참 많이 들었다. 얼마나 베이킹 클래스를 성실히 다녀왔으면! 아나운서를 그만둔 이후, 아니 그만두기 서너 달 전부터 알차게 챙겨 들었던 베이킹 클래스, 그 아이템만 십여 품목에 이르렀으니. 결혼 준비로 정신없었던 것, 유학 준비로 마음 편한 날 없었던 것까지 함께 고려하며 나 참 스스로를 바쁘게 몰아세웠다. 좋아하는 먹을거리이기에 배우기 시작했지만, 별 것 아닌 통통한 반죽이 규칙에 따라 정제된 모양새로 피어나는 그 흐름을 사랑했다.
마카롱 중에서도 최근 인기라는 '뚱카롱' (꼬끄와 꼬끄 사이에 필링을 두껍게 넣어 뚱뚱하다는 데서 태어난 별칭)을 만들어낸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일관된 규칙 안에서도 이렇게나 도톰하고 알찬 자태를 뽐내고 싶은 나의 마음과도 닮았노라고. 최대한 남들에게 비교적 생소한 아이템을 배운 날엔 이런 마음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남들이 알지 못하는, 곧 신비하게 반짝거릴, “미지의 새 영역을 개척했노라, 낯선 규칙 안에서도 이렇게 적응 잘했노라"라고 말이다. 뻔한 규칙을 거부하고 새 규칙을 만들어가는 작업. 규칙, 너란 아이 없어도 주무를 수 있는 반죽 같은 하루지만 자꾸만 조금 더 트렌디하게 가다듬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초조한 퇴사자의 심정. 그렇게 나는 회사 그만둔 다음날, 마카롱을 빚었다.
퇴사 준비생 시절을 함께한 '베이킹 클래스' 소개
스윗모리 (강원도 춘천)
방금 이야기한 마카롱을 빚어낸 공간. 2013년, 스윗모리의 전신, '달그락공방' 시절부터 선생님께 자주 배웠다. 처음에는 클래스만 운영하셨지만 현재는 카페를 겸하는 공간까지 생겨나 #춘천마카롱맛집 으로 소문난 여기. 각종 타르트와 구움 과자도 종종 배웠다. 다정다감한 선생님덕분에 언제 들러도 베이킹은 물론 힐링까지 겸할 수 있는 곳.
써니사이드키친 (서울 서초구)
당케산도와 그래놀라 수업을 들었다. 아이스크림 스쿱쿠키가 배우고 싶어서 처음 알아보게 되었는데, 보스턴으로 오기 전 가장 쉽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케이크 아이템을 확실하게 배워두고 싶어서 당근케이크를 배워야겠다고 작정하고 수강. 생각보다 너무나 신속하게 배울 수 있었던 아이템에 대만족. 실제로 남편의 생일파티 때도 여기에서 배운 아이템을 200% 잘 활용해냈다.
밀로베이킹 클래스 (서울 송파구)
송파구로 이전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내가 수업듣던 2018년 당시에는 양재천 근처에 위치했던 작고 아담한 공방. 베이킹 공방 인테리어, 푸드스타일링 하나하나가 모두 내가 사랑하는 스타일, 취향저격이어서 관심갖게 된 곳. 실제로 베이킹뿐 아니라 마케팅 경력이 있는 선생님의 탁월한 지도덕분에 베이킹 창업에 특히 조언을 얻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수강해보기를 적극 권장한다. 나는 얼그레이 시폰 케이크와 까눌레 수업을 들었다. 배우고 싶은 아이템은 무척많았으나 출국 관계상 타임라인이 맞지 않아 다 수강하지 못하고 온 게 한이라면 한. 날씨 좋을 때 수업 끝나고 근처 석촌호수 공원을 찾아 산책까지 덤으로 하고 온다면 꿀맛 중에 꿀맛일 듯. 아!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베이킹 플래닛 (서울 서초구)
시중에 파는 BAKE 치즈 타르트를 좋아해서 남편과 종종 사 먹곤 했는데 그 스타일 그대로를 집에서 구현 가능하다고 해서 보스턴에 오기 직전, 수강했다. 아무리 유명한 베이커리 많은 미국일지라도 왠지 한국적인 내 입맛에는 조금 부담스러울까 싶어서 평소 좋아하던 스타일의 디저트들, 조금 덜 달고 자그마한 매력이 귀여운 아이들을 최대한 많이 배워두고 직접 해 먹자는 게 내 전략이었다. 섬세함을 더하기 위해 스스로 연습을 좀 해야겠으나 선생님이 꼼꼼하게 개인지도해주신 덕분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 팍팍 충전. 그 외에도 요즘 핫하다는 디저트 아이템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 최신 트렌드를 따라잡고 싶은 자들은 클릭.
듀 쇼콜라 (서울 성북구)
카페 파운드 5종 수업을 들었다. 진한 커피 한 잔 내려서 달콤한 디저트 한 입 음미하는 게 우리 부부의 페이보릿. 덕분에 파운드케이크나 마들렌 수업은 공들여서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향 좋은 원두 갈아서 내리고 레몬향 그득한 파운드케이크, 아차차 그 위에 살포시 뽀얀 아이싱까지 덧대어져 있다면, 피로가 싹 풀릴 것 같지 않은가! 베이킹 클래스마다 파운드케이크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으니 본인의 취향 따라 배우고 싶은 파운드를 선택하면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말차 콩 파운드케이크와 얼그레이 홍차 맛 파운드케이크를 제대로, 완벽히 배우고 싶었기에 무리해서 5종이나 배웠다. 이외에도 쇼콜라티에 자격을 지니신 선생님의 전문적인 초콜릿 수업과 더불어 마들렌 수업도 들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수업이 운영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잠시 재충전하셔서 복귀하실 예정이라고 하니,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때쯤 다시 수업 들을 기회가 생겨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