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의 소설 "The House of Mirth" 페이퍼
“『기쁨의 집』 속 공예품화된 여성과 과시적 소비”
1. 서론
소설 『기쁨의 집』이 발간된 것은 1905년으로, 유럽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와 아르누보(Art nouveau)로 대변되는 향락과 안정의 시기이다. 당시 사회는 발달된 기술과 과학을 중심으로 한 낙관적이고 진보적인 관점이 유행함과 동시에 유럽을 중심으로한 제국주의 사상과 계급간 갈등, 빈부격차가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워튼은 결혼 비즈니스를 소재로 하여 이 시기 여성의 삶을 소설에 그려낸다. 특히 본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기쁨의 집』은 벨 에포크 시기의 양면적인 모습, 기술의 발전과 안정기라는 긍정적인 면모와 대비되는 고정된 성역할, 한정적인 여성의 사회진출 가능성이라는 부정적 면모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애벗의 글에 따르면, 『기쁨의 집』은 아르누보 시기를 지낸 워튼의 경험이 녹아있는 글이다. 소설의 원제였던 “A Moment's Ornament”(Abbott 74)에서 볼 수 있듯, 워튼은 장식품으로 다루어지는 당시 여성의 모습을 릴리 바트를 통해 그려낸다. 애벗은 아르누보 시기와의 연결을 통해 “릴리 바트는 등장부터 쇠퇴와 끝에 이르기까지 세련되고 강렬했던 장식운동인 아르누보의 실제적 의인화 역할을 한다”(Abbott 74)고 주장한다.
실용적 가치보다 공예장식품의 미적 가치가 중심이 되었던 아르누보 문화처럼, 그 시기 여성의 삶 또한 이상화된 여성의 모습을 추구하도록 내몰린다. 자신의 자아나 본능에 따른 선택이 아닌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자신의 자아 또한 그와 일치되도록 교육된다. 이 모습은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반복하며 충동적 행위와 인물 간의 관계로 인해 추락하는 릴리 바트의 삶과 연결된다.
워튼은 주인공 릴리 바트의 삶을 통해 결혼을 위해 길러지고 교육받은 여성이 한순간의 상황으로 인해 추락하고 재기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된 모습을 그려낸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추방된 여성이 현실을 직시하는 과정에서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것이 릴리의 내적 갈등이다. 워튼은 릴리 바트를 통해 그 시기 여성이 가지는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주어진 결혼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충동적인 행동을 벌임으로써 임무 수행을 실패하게 되는 릴리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 규범 하에 만들어진 자아와 자연적으로 생성된 자아의 불일치를 보여준다.
두 자아 간의 충돌과 인간 관계의 복잡함 속에서 릴리는 추락을 경험한다. 로즈데일과 그라이스를 비롯한 남성들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 금전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유혹을 받고 그것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릴리는 모든 기회를 상실한다.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를 돕고자 또는 계약을 시도하는 손길이 있었지만 내적 갈등 끝에 유혹을 거부하고 “명예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희생되는 인물”(292)이 된다. 릴리는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갈망의 충돌 속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인 “장식품으로 역할하도록 길러져 온 것”(289)을 직시한다. 셸던과의 대담을 통해 릴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은 결혼을 통해 사교계에 종속되는 것뿐임을 인정하며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전 정말 노력했어요. 그러나 삶은 어려운 일이더군요. …… 전 그저 삶이라는 거대한 기계 속 나사 따위나 톱니바퀴에 불과했던 거예요. 거기서 떨어져 나오니 어디서도 쓸모가 없 는 존재란 걸 알았어요. 오직 한 구멍 외에 맞는 곳이 없단 걸 알게 되었는데,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거나 쓰레기더미로 내던져질 수 밖에요.’(300)
사교계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신에게는 명예를 내려놓고 다시 사회로 돌아가거나 운명을 거부한 대가--죽음--만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그 상황에서도 셸던은 릴리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의 호소가 결혼을 통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표현으로 인지한다.
두 사람의 대담은 소설의 초반부에서 보여준 장면과 흡사하다. 정신적 교감이 가능한 친구를 찾는 릴리의 모습과 그런 릴리에게 끊임없이 결혼이라는 소명을 상기시키고 언급하는 셸던의 모습은 죽음을 향하는 릴리의 운명 후반부에서도 동일하게 흘러간다. 릴리가 처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셸던을 보며 릴리는 그에게서 구원받지 못함을 깨닫는다. 이후 과거 자신이 도왔던 네티와의 만남을 통해, 릴리는 자신이 교육받아온 자아, 운명과의 타협과 욕망에서 벗어나고 스스로의 운명과 마주하며 죽음을 선택한다.
본 글에서는 릴리 바트를 통해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공예품화된 여성의 모습과 자아의 불일치를 다루고자 한다. 소설 속 상품으로 다루어지는 릴리의 상황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한다. 릴리 바트의 모습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 속 장식품으로 여겨지는 상류층 여성의 한계와 부르주아지의 과시적 소비 풍조에서 여성과 남성의 행위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다룰 것이다. 이를 위해 베블렌의 과시적 소비를 가져와 릴리 바트의 운명을 분석할 것이다.
2. 본론
릴리 바트의 자아는 스스로를 “끔찍하게 가난하면서도 무척이나 비싼 존재”(11)로 인식하는데서 시작한다. 이 대사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인식한다. 자신이 결혼 시장에 판매되기 위해 길러진 상품임을 인식하고, 자신이 지니는 가치 또한 옷차림과 외모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받아들인다. 남성인물의 시선과 대사들 또한 끊임없이 릴리를 구경거리, 장식품, 남성의 재산을 과시하기 위한 아내감으로 표현하면서 상품으로 대상화되는 릴리의 처지를 드러낸다.
릴리의 행동은 여성을 상품으로 보는 19~20세기 레저계급의 풍조와 일치한다. 책의 3장에서 릴리의 과거를 통해 그의 자아가 어디서 기반되었는지가 드러난다. 릴리는 사교계에 등장한지 겨우 1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집안의 몰락을 겪고 고모인 페니스턴 부인의 양육 아래로 들어간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기 전 남긴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미모에 연연하고 이를 보존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모든 재산을 잃고 난 후에 종종 원한 서린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하던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넌 언젠가 모든 걸 되찾을 거야. 네 미모로 모든 걸 되찾을 테다.’(29-30)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말에 연연하듯 릴리는 외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기 스스로에 대한 평가 또한 장식품, 소유물로서의 가치를 추구한다. 자신이 처한 금전적 위기와 현실을 마주하며 이를 해결할 방안을 강구해야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얼굴에 새겨진 작은 주름과 도박빚 때문에 지불하지 못한 옷과 장식품 대금을 떠올린다. 릴리의 행동은 현실적으로 다가온 금전 위기를 외면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미--를 보존하려는 방어기제에 가깝다. 또한 릴리는 자신의 처지가 사교계 세계에서 “그만 결혼할 때가 된”(11) 인물로 여겨지고 있음을 직시하고 있으며, 자신의 상품성이 가치를 잃어감을 인지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릴리와 페니스턴 부인의 원활하지 않은 관계 역시 릴리가 자신의 외모에 집착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페니스턴 부인은 릴리가 사교계 사회에 속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지출이 필요함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그를 지원하지 않는다. 소설의 묘사에서 드러나듯 페니스턴 부인은 방관자에 가깝게 릴리를 양육하며, 그가 감사함을 잊지 않도록 간헐적으로 금전적 후원을 해준다. 이런 비정기적 수입으로 인해 릴리의 금전적 위기는 더욱 강조된다. 이 관계는 릴리의 빚과 트레너와의 추문으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결국 페니스턴 부인과의 악화된 관계로 인해 릴리는 유산 상속의 기회를 잃고 이전보다 심각한 금전 위기에 시달린다. 그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결혼할 남성을 찾고 그토록 혐오하던 로즈데일의 청혼을 수락하고자 하지만 오히려 로즈데일이 릴리의 상황을 언급하며 이를 거부한다.
금전적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릴리는 내면에 존재하는 태생적 자아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자아가 충돌하며 남성 인물들에게 서로 다른 자아를 드러내게 된다. 릴리의 자아는 셸던, 그라이스, 로즈데일 세 사람에게 서로 다르게 적용된다. 1)셸던에게 표출되는 릴리의 자아는 태생적 자아, 순수성이다. 2)그라이스에게 표출되는 릴리의 자아는 소유물로서의 가치를 추구하는, 만들어진 자아다. 3)로즈데일에게 표출되는 릴리의 자아는 과시적 소비물로 여겨지는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객관적 자아다.
셸던에게 드러나는 릴리의 자아는 명예를 유지하고 태생적 자아, 결혼과 이해관계가 아닌 진정으로 마음을 털어놓는 대상이 필요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에서 비롯된다. 릴리는 셸던과의 대담에서 자신이 원하는 건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남자가 아닌, 서슴없이 쓴 소리를 해줄 진정한 친구”(10)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릴리를 바라보는 셸던의 시선과 충돌하면서, 릴리가 가진 레저계급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낸다. 셸던은 진심을 드러낸 릴리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도를 결혼이라는 임무를 완수하려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소설 속에서 셸던은 지속적으로 릴리를 감상품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릴리를 “구경꾼의 입장에서 즐겨왔다”(6)는 고백과 더불어 다른 여성과의 비교를 통해 릴리를 철저하게 대상화한다. 릴리를 향한 셸던의 인식은 상류층 여성을 집안의 장식품으로 여기는 당시 풍조와 일치한다.
셸던의 사촌인 거티 패리시와의 비교를 통해 상품으로 여겨지는 릴리의 상황이 더욱 강조된다. 릴리는 지속적으로 셸던과 거티가 가진 자신 만의 공간을 선망한다. 동시에 자신에게 그것이 없음을 인지하고 보호자를 상실한 처지를 극복하고자 결혼을 이용하려 한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노동자 계층으로 전락한 릴리는 셋방을 자신 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될대로 악화된 상태라는 아이러니함을 자아낸다.
릴리는 과거 자신이 도왔던 네티 스트루더의 가정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던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은 단순히 상황과 공간을 통한 것이 아닌, “남성의 신뢰와 여성의 용기”(311)가 기반이 되어야 실현 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릴리는 셸던에게 표출한 자신의 용기는 시기를 놓친 것이며, 자신을 향한 셸던의 신뢰 또한 빛을 잃은 상태임을 깨닫는다. 셸던과의 대담을 통해 릴리는 셸던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자신 또한 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그는 자신의 상황을 회복할 수 있었던 도싯부인의 편지를 불태우고 쓰레기더미 속으로 내던져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라이스와의 관계에서 릴리는 소유물로서의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이 강하게 드러난다. 레저 계급에 속한 릴리는 그 계급에 적절하지 못한 금전적 상황과의 괴리 속에서 지속적으로 더 나은 삶을 갈구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인 결혼 계약물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결혼 대상을 찾아 상황을 안정적으로 바꾸고자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릴리는 그라이스를 유혹해 그와 결혼하고자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이 지불해야할 대가, 그라이스와의 따분한 일상을 보내게 될 상황을 두려워 한다.
베블렌에 따르면 과시적 소비의 목적은 “아내의 불필요한 생산적 욕구를 증명하는 이중 역할을 하는 것”(Veblen 38)이자 “아내의 여가와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함을 보여주는 형태”(Veblen 38)이다. 소설에 나타난 과시적 소비는 그라이스를 통해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 번째로는 과시적 소비의 도구가 되고자 하는 릴리와 두 번째로는 그라이스가 수집하는 ‘아메리카나’를 통해서다.
‘아메리카나’는 그라이스의 취미이자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수집품인 아메리카나는 그라이스의 계급을 드러내는 과시적 소비물이다. 아직 아내를 얻지 못한 그라이스는 자신의 소비와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과시적 소비를 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는 과시적 소비를 위해 삼촌에게서 물려받은 서적을 자신의 취미이자 자부심인 것으로 포장한다. 그의 행동은 과시적 소비이면서도 가문이 가지는 역사성과 명성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릴리는 그라이스의 행동이 “사람들 앞에 직접 나서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보상심리”(22)인 것으로 추측한다. 또한 그라이스의 주변 인물들이 아메리카나에 대한 관심이 전무함을 드러내며 그의 수집행위가 실용적이거나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라이스의 행동은 베블렌이 주장한 과시적 소비의 행동과 비슷하다. 단지 그 행동을 주도하는 것이 돈을 벌어오는 남성 자신이며, 아내의 욕망이 아닌 가문의 명성을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동시에 아메리카나는 릴리가 그라이스를 유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소재로 작용한다. 릴리는 셸던을 통해 아메리카나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이용하여 그라이스에게 접근한다. 더 나아가 릴리는 그라이스와의 결혼을 계획하며 자신을 아메리카나와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라이스의 결혼 계약을 완수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면서, 그의 수집품인 아메리카나를 대체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다.
그녀는 지금껏 아메리카나가 그라이스에게 했던 역할을 자신이 대신할 생각이었다. 그가 아낌없이 돈을 쓸 만큼 충분히 자부심을 느끼게 할 단 하나의 소유물이 되고자했다. ……그녀는 남편의 허영심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신의 소망을 충족하는 일이 곧 남편에게 가장 세련된 자기 탐닉의 방식으로 여겨지게끔 만들 거라 결심했다.(50)
릴리는 그라이스와의 관계에서 결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자신을 철저히 상품화하고 전략적으로 행동한다. 셸던과 로즈데일의 관계에서 릴리는 여러 욕망들에 의해 계획을 완수하지 못하고 명예와 도덕을 유지하려는 태생적 자아를 드러낸다. 이 점에서 볼 수 있듯 릴리와 그라이스의 관계는 셸던과 로즈데일과의 관계와 차이점을 둔다. 셸던과 릴리의 관계에서는 릴리의 감정과 진실성이 작용되고, 로즈데일과 릴리의 관계에서는 비슷한 욕망--상류 사회로의 진입과 명성 유지--이 존재하고 같은 계획을 지니는 공통점이 작용된다. 릴리는 둘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욕망을 가지게 되고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사회적 자아와 태생적 자아 간의 충돌을 겪는다. 결국 결혼을 통한 상황 개선이라는 목표가 흔들리게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반면 릴리와 그라이스는 전형적 결혼 비즈니스 관계를 따른다. 릴리는 자신 뿐만 아니라 그라이스 또한 철저히 대상화하며 서로를 결혼 계약으로 교환되는 상품으로 인지한다. 그라이스와의 관계에서 릴리는 자신을 결혼 시장의 상품이자 과시적 소비물로 여겨지는 자신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따르고자 한다. 셸던과 로즈데일의 관계에서 릴리가 일방적으로 상품으로 다루어진 것과 달리, 그라이스와의 관계에서는 상호적으로 상품화된다.
상호적으로 상품화된 관계임에도 릴리와 그라이스 간의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이러니로 작용한다. 철저하게 자신의 목표를 완수하고자 하고, 성공에 거의 도달하나, 셸던의 등장으로 무산된다. 릴리의 실패는 소설의 초반부에 암시된다. 셸던과의 대담에서 릴리는 남성과 여성이 같은 상황에 처해도 다른 처지임을 인식하고 이를 드러낸다.
‘아, 그 점이 다르죠. 여자에겐 필수적이지만, 남자에겐 선택일 뿐이죠.’ 그녀는 비판적인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 코트가 조금 낡았군요. 근데 누가 그걸 신경쓰겠어요? 그거 때문에 당신이 저녁식사에 초대받지 못하는 일은 없겠죠. 하지만 제가 그랬다면 여지가 없었겠죠. 여자가 초대받는데엔 사람의 됨됨이만큼이나 옷차림도 중요하거든요.’(13-14)
릴리의 실패는 결혼 비즈니스에서 여성 만이 상품으로 다루어지는 것에서 비롯된다. 릴리의 사촌인 스테프니를 통해 알 수 있듯, 결혼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극복해야하는 처지가 동일함에도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상황은 다르게 흘러감을 볼 수 있다. 스테프니는 결혼을 위해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며, 릴리와 달리 부유한 여성과의 결혼에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상품화하거나 또는 상품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 릴리는 상품으로 여겨지는 자신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더 나아가 그라이스를 자신과 동일한 상품으로 여긴다.
릴리의 운명은 그라이스가 “릴리를 평생 지루하게 만드는 영광을 안겨주도록 결정할 수 있는”(25) 인물임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계약물로서 종속되는 것이다. 베블렌은 과시적 소비의 과정에서 “이론적으로 여성은 남편의 소유물로 취급당하는 부당한 처지에 놓여있으며, 여가와 소비를 대행하는 관습은 속박되고 고용된 자라는 징표”(Veblen 39)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릴리는 자신과 그라이스를 동일한 거래물, 계약물로 인지하고 서로를 상품화된 존재로 대한다. 릴리는 대리 여가와 대리 소비를 하는 계약의 객체로서 자신을 다루지 않았기에 그라이스와의 계약에 성공할 수 없는 필연적 운명을 지니게 된다.
그라이스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상품으로 인식한 릴리의 모습처럼 그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또한 동일하다. 릴리를 상품이자 과시적 소비물로 여기는 모습은 로즈데일에게서 극심히 드러난다. 로즈데일은 릴리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면서, 릴리를 자신을 사교계에 진입시켜줄 도구이자 자신의 재산을 제대로 소비해줄 아내감으로 대한다. 릴리 역시 로즈데일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그의 시선이 마치 자신을 장식품, 비싼 물건 마냥 가치를 내리듯 바라본다는 표현을 자주 언급하며 남성에게 인격적 대상이 아닌, 장식품으로서 대해지는 자신의 처지를 드러낸다.
로즈데일은 베블렌이 주장한 과시적 소비를 보여주는 전형적 인물로서, 릴리를 소유하고자 하는 그의 대사와 행동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릴리에게 자신의 금전적 성공을 드러내며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한 여성이 필요함을 밝힌다.
‘저는 돈을 원했고,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적합한 여성을 위해 그 돈을 쓸 수 없다면 아무 쓸모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바로 제가 돈으로 하고 싶은 겁니다. 전 세상의 모든 여성을 초라하게 만드는 그런 아내를 원해요. 이를 위해서라면 조금도 아끼지 않고 쓸 의향이 있어요.……이제 제가 어떤 여성을 원하는 지 당신로 알 거라 생각합니다, 바트양.’(172)
로즈데일이 릴리에게 청혼을 시도하고 또 그것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모두 릴리의 평판과 상황이 작용한다. 로즈데일이 청혼을 시도할 당시 릴리는 갓 평판이 흔들리기 시작하던 상황이었다. 로즈데일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그와 결혼을 통해 릴리를 둘러싼 추문이 잠재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던 시기이다. 그라이스를 같은 상품이자 계약의 대상으로 보던 것과 달리, 릴리는 로즈데일에게 같은 시선을 적용하지 않는다. 결국 릴리는 로즈데일의 청혼을 거절하게 되고 추락은 빠르게 이루어진다.
릴리가 로즈데일에게 접근하는 장면에서 로즈데일은 릴리의 평판이 훼손되어있음을 지적하며 청혼을 거두어들인다. 그는 자신의 연정은 변함없음을 주장하며, 자신과의 결혼 계약을 위해 릴리의 명성을 회복할 것을 종용한다. 그는 릴리와 동일하게 편지를 이용해 도싯 부인을 협박하고 이를 통해 명성을 회복할 것을 꾀한다. 릴리는 로즈데일의 행동을 보며, 그와의 계약은 이득만을 추구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는 과시적 소비 관계가 가부장사회에서 남성에게 종속되는 여성의 처지를 담습하는 것이다. 또한 베블렌에 따르면 과시적 소비는 “레저 계급 남성이 명성을 얻기 위한 방법”이다.(35) 로즈데일이 릴리의 평판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는 것은 과시적 소비가 여성을 통해 대리적으로 소비를 과시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닌, 명성을 얻고자하는 것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로즈데일은 지속적으로 릴리를 얻기 위해 시도하는 과정에서 릴리의 명성을 회복시키는 것을 우선적으로 행하고자 한다.
3. 결론
릴리는 자신이 결혼 비즈니스에 놓여진 상품으로 길러져왔으며, 이를 따르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인지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며 추락의 길을 걷는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릴리의 자아는 복합적이다. 상품으로 대해지는 자신의 처지를 수용하고, 결혼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적극성이 존재하나 한편으론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모습이 공존한다. 이 자아는 작품에 등장하는 세 남성, 셸든과 그라이스, 로즈데일에게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릴리를 대하는 남성들의 태도는 일관적이다. 모두 릴리를 결혼 시장에 존재하는 상품이자 아냇감, 자신의 과시적 소비를 대신해줄 인물로 본다. 반면 릴리는 각 남성 별로 서로 다른 태도와 욕망을 가지며,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거나 성취하지 않는다.
본 글에서 결혼 비즈니스에서 장식품, 상품으로 다루어지는 릴리의 모습을 통해 당시 여성이 처한 한계를 다루고 각 인물들이 가진 과시적 소비의 모습을 분석하고자 했다. 각 인물들이 가진 과시적 소비의 모습을 분석하며 이를 릴리의 운명과 연관짓고자 하였으나, 이를 다루지 못한 부족함이 존재한다. 릴리가 경제적 현실과 사교계 사회라는 환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갈등을 반복하고 실패를 겪는 과정에 대해 좀 더 다룰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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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 cited
Wharton, Edith. "The House of Mirth".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Abbot, Reginald. “‘A Moment's Ornament’: Wharton's Lily Bart and Art Nouveau.” Mosaic: A Journal for the Interdisciplinary Study of Literature, vol. 24, no. 2, 1991, pp. 73–91.
Veblen, Thorstein.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Course packet
20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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