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라는 꿈 (2)

사랑과 희생은 댓가를 원한다

by 김혜원
행복한 시절이었다


나는 내가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니 나 역시 격하게, 좋은 배우자가 되고 싶었다. 림이라곤 해본 적 없었지만 잘하고 싶어서 두근거렸다. 결혼 한 달 만에 예상치 못한 아이까지 들어섰다.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새로운 인생을 나는 정말 잘 살아내고 싶었다. 이전 삶에서 겪은 혼란과 좌절 실패를 모두 보상받을 만큼 대단히 멋진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덧이 심했는데 남편이나 어른들이 일을 잠시 쉬기를 권했다. 시 쉬려던 나는 미련 없이 일을 때려치우고 본격적으로 현모양처가 되기로 했다. 생의 목표는 이렇게 바뀌기도 한다.


요리와 청소와 빨래에 진심이었다. 살림과 육아책만 수십 아니 수백 권은 본 것 같다. 볼 수 있는 건 다 봤으니까 말이다. 남편에게 정리를 잘 못한다는 말을 듣고 정리 컨설턴트 자격증까지 따면서 나를 집사람으로 최적화시켰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산후 우울증이 왔지만 남편에게 집안일을 맡긴 적이 없다. 남편은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고 바깥일에 전념하도록 하는 게 '현모양처'고, 그게 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나에게 잘해주었고 아이들도 잘 커갔다. 모든 게 잘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유능하고 지혜로운 현모양처가 되어가고 있다고 믿었. 스무 살에 자립하고 늘 일에 쫓기던 나에게

온전히 내 살림 내 가정만 가꾸며 주인으로 사는 건... 즐거웠다. 가정주부가 체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오래전 방송국에서 도망치며 회피했던 바로 그 두려움을 10년 만에 다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었다. '어, 이게 아닌데, 덫에 걸렸다'는 느낌. 그저 유예했을 뿐일까?


아마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면 몰랐을지도 모른다.

숨이 찰 때쯤 한 번씩 여행, 작은 일탈 등을 하면서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되뇌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없어서 아이들이 등원도 하고 최근 시작한 내 작은 사업을 키워갈 수 있었다면, 아마 이 모든 것-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고, 남편은 내편이 아니고, 내 감정은 둘 곳이 없다는 것- 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지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가지고 그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10년이나 애를 썼단 말이에요. 그 사람은 사실 청소년기에 화목하고 안락한 가정에 대한 결핍이 있거든요. 그걸 제가 알고 채워주려 애를 썼으면, 저도 얻는 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저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어요. 집안일도 육아도 싹 다 제가 해요. 부담 안 줘요. 요즘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그런데도 인정받는 거 같지가 않아요."


-인정이요?


"그냥 다정한 말 좀 해주고 잘한다고 인정해주고 그러길 바라는 게 욕심인가요? 그 사람은 절대 희생하는 법이 없어요. 제가 바라는 건 이만큼인데 무조건 자기는 딱 요만큼만 되니까 받아들이라는 말만 하잖아요. 뻑하면 성 금성 거지 같은 책 들먹이면서 변명하길래 진짜 꾹 참고 책처럼 대놓고 요구해도 '결국 안 준다'니까요? 저는 동안 제가 한 노력들이 너무 억울해요. 저는 뭐 청소하고 빨래하고 애 키우는 걸 언제 해봐서 지금 하고 있는 줄 아는 건가 봐요. 닥치면 하는 거고 간절하면 하는 건데 그런 노력조차 안 하는 게 너무 화가 나서 미치겠어요.. 엉엉엉...."


끄덕이며 내 말을 듣던 선생님은 말했다.


-그런데... 그건 사랑이 아니라 미끼를 던진 거 아닌가요? 사랑은 원래 조건이 없는 건데요.




사랑으로는 안 되는 일




전문의와 상담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10년간 전업주부로서 수호해온 가치는 사랑이 아니었다. 내가 열심히 10년간 해 온 것은 사랑과 헌신이 아니라, 그냥 집안일과 생활이었다. 또한 내가 한 게 사랑이 아니듯, 내가 바란 건 남편의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현모양처라는 환상 속에 숨겨진 내 노동과, 내가 포기한 시간, 내가 될 수 있었던 나, 이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원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지만 보상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랍게도 혼에선 기브 앤 테이크가 안 통했다. 운명이라고, 결혼이란 1+1-=1 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우리는 각자 1인분의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게 진짜 운명이었다.


그게 남편을 닦달해도 소용없는 이유였다. 내 그릇이 안되어 못했지만 아마 좋게 회유했어도 마찬가지였을거다. 남편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고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이건 내 문제였다. 완벽히 내 인생의 문제였다. 지난 10년간, 내 인생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비어 있었다.


10년 만에 데자뷰처럼 다시 직면한 이 두려움은 럼 어서 도망가라고 속삭였다. 그런데 어디로? 이미 도망쳐 온 나는 나는 더 이상 도망칠 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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