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람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프고 등에 통증이 느껴져 한의원을 다녀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내 좌석 옆자리에 중년 여성이 앉게 되었는데 정해진 한 자리의 크기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며 팔꿈치로 은근히 내 팔을 밀었다. 더 옆으로 가라는 무언의 압박.
팔 힘에서 밀렸으나 허벅지 힘으로 그녀의 다리를 밀고 정해진 규격의 한 자리를 나는 지키고 앉았다.
그녀는 나를 흘깃 한 번 쳐다보고는 포기한 듯 자신에게 허락된 범위에 맞춰 하차할 때까지 거친 숨소리를 내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조용히 분을 삼키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자리를 더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침범하지 마세요. 나의 영역을. 나는 성난 치와와거든요.'
나는 촉각에 예민하고 청각은 민감하고 후각은 과민하다.
모르는 이와 접촉되는 것이 싫고 초침 째깍거리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으며 물비린내 나는 물은 마시지 못한다. 소리 나지 않는 시계를 찾고 대중교통에서 타인이 내게 몸을 기대어 오는 것 같으면 자리를 피한다.
다른 이에게 좋은 향이라도 내 취향이 아니면 그 냄새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놀러 갔던 숙소의 향 램프를 꺼버린 적도 있고 챙겨간 핸드크림을 코 밑에 바르고 잔 적도 있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도 내 귀에는 잘 들려서 달달 거리는 냉장고 소음 때문에 미지근한 물을 마실지언정 저 소리는 못 듣겠다 싶어 펜션 냉장고 코드를 빼어둔 적도 있다.
항상 덤벼들 준비가 되어있어 이빨을 드러내고 그르렁 거리는 치와와 같은 나.
예민한 성격은 공격성과 방어력을 높여놓았고 나에게 불편을 주는 요소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 해결해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겁은 많지만 행동하는 것에 주저함 없는 이상한 사람.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나의 예민함은 내 삶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고 나를 괴롭게만 해.'라는 생각이 나의 잠을 대신했고 이렇게 살다가 말라죽겠다 싶어 나만의 해소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첫 째, 촉각에 대해.(특별히 타인과의 접촉)
살아있는 생명의 경이로움이라고 생각하자. 그가 내쉬는 숨과 체온을 따스한 생의 에너지로 느끼자.
실패했다. 땀에 젖은 살결로 한 팔을 지그시 내 가슴 쪽에 가져대며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감싸 쥐고 거칠게 숨을 내쉬는 그 아저씨 때문에. 누군가의 살아있음이 역겨울 수도 있군.
역시 타인과의 접촉은 최대한 피하는 게 답이었어..
둘째, 청각에 대해.
소리에 집착하지 말고 흘려듣자. 소리의 근원을 궁금해하지 말고 배경음처럼 생각하자.
다른 생각을 하고 속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떠올리거나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상상해본 결과, 이 방법들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길거리에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불특정 다수의 행인들이 뱉어대는 욕설에 대해서도 자체적으로 음소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말의 내용을 궁금해하지 않으면 되는 일.
셋째, 후각에 대해.
코가 막혀서 겪는 불편함 들을 떠올리며 내 후각에 감사하기. 좋아하는 핸드크림을 늘 휴대하기.
예상치 못한 오물 냄새나 담배연기를 맞닥뜨렸을 때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도록 폐활량 높여두기. 그러나 이 방법들은 근본적인 해소는 어렵다. 그래도 예전처럼 냄새 맡고 헛구역질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좋든 싫든 이런 예민함 들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내가 겪은 어려움 때문에 다른 이들을 대할 때도 나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신경 쓰고 조심하는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예민함을 해소하는지 궁금하다. 당신도 나와 같은 치와와스러움이 있다면 조용히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