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지켜, 살들아.

지방은 사람을 가리지 않아요.

by 엘리

달리기를 할 때, 슬로모션처럼 좌우로 천천히 흔들리는 살들을 보면 그 몸이 내 몸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다. 다부지고 탄력 있는 슬림한 허벅지는 어디로 갔나. 마른 체형의 사람에게 가지는 선입견 중 하나가 성격이 예민하고 까칠해서 말랐을 거라는 생각인데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늘 내가 듣던 소리 었다. 하지만 말랐다고 다 예민하지 않고 뚱뚱하다고 둥글고 무딘 성격이 아닌 것이다.



나는 10년이 넘게 45~47kg의 몸무게를 유지하며 나 스스로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믿으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 후 살이 찌기 시작했고 체형도 바뀌면서 가지고 있던 옷의 3분의 1 정도는 입지 못하게 되고 그때의 당혹스러움을 떠올리면 지금도 살짝 우울한 느낌이 든다.

30대가 넘어가면 여자는 신진대사능력도 떨어지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가만히 있어도 1년에 0.5~1kg의 살이 붙는다는 우연히 읽게 된 기사에 위로받으며 열심히 튼살크림을 바르던 나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래. 나이 들면 나잇살이라는 게 붙는다잖아. 하지 않던 운동도 하고 야식도 줄이면 살이 빠질 거야.'


관절에 무리가 없으면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검색하고 발레핏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복장을 갖춰 입고 발레슈즈를 신고 우아한 음악에 맞춰 동작을 하면 어느새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나고 얼굴에 열이 올라 갈증이 느꼈다. 그 목마름을 참고 마지막 스트레칭까지 한 후 매트 정리를 하고 마시는 그 한 잔의 물이 얼마나 달콤하고 시원했던지. 집으로 돌아갈 때 근육통으로 인해 힘들었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로 견뎠다.


석 달이 지나도 몸무게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승마살 때문에 입기 힘들었던 바지와 늘어난 뱃살로 허리가 맞지 않았던 치마를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몸의 형태가 변한 것이다.

그래도 나의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40킬로대의 내 원래 몸무게로 돌아가고 싶었고 엄격한 식단 조절을 통해 49.3kg 이 되었을 때 스스로가 대견했다. 나도 하고자 하는 일은 해내는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다이어트에 성공한 상태로 유지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이어트식은 메뉴가 한정되어 있었고 내가 무엇 때문에 먹고 싶은 것들을 마다하며 배고프고 힘든 이 일을 반복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날씬한 몸매로 수입이 창출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건강상의 문제로 체중감량이 필요한 사람도 아닌데 왜 불면증에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입병까지 얻어가며 이 몸무게를 유지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려워 그냥 된 대로 살자 생각하고 다이어트를 그만두었다.


내장지방이 있고 배, 엉덩이, 허벅지 이 세 곳이 다른 부위보다 살이 많이 붙은 하체비만이 되어버린 내 몸이 싫었지만 식단 조절이 힘들어서 애써 내 모습을 외면했다.그러던 어느 날, 늘어진 뱃살을 거의 주워 담다시피 청바지에 욱여넣고 터져버릴 것 같은 단추를 간신히 끼운 채로 낑낑거리는 나를 보니 짜증이 확 올라왔다.


입고 싶은 옷도 마음대로 못 입는 건 진짜 별로다 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원하는 옷을 제약 없이 입을 수 있고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나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기를 원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니 다이어트를 해야 할 이유와 목표가 생겼다.

처음에 시도했던 다이어트는 극단적으로 나를 몰아붙였으니 이제부터는 다른 이들의 성공에 맞춘 운동과 식단이 아니라 내게 적합하고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다이어트 계획을 세워보자 다짐했다.


그 결과, 1년 전부터 나는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아침 공복에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실내 자전거를 20분 타고 스트레칭 20분 근력운동 10분 후 나머지 10분 정도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무아지경으로 춤을 춘다. 팔다리를 휘젓는 수준이라도 보는 사람 없으니 마음 놓고 느낀 대로 표현한다.


식사는 주말을 제외하고 아침은 거하게 먹고 점심과 저녁과의 시간차가 4시간이 되도록 식사 시간을 준수한다. 예를 들면 10시에 아침 식사를 했으면 오후 2시에 점심, 오후 6시에 저녁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 퇴근 시간과 아이의 밥시간까지 무려 3번의 밥상을 차려낼 수 없어서 저녁식사는 7시에 하고 5~6시쯤 간식으로 견과류나 콩물 아니면 초콜릿 하나를 먹으며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린다.


주중에 유당과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토, 일요일은 먹고 싶은 것은 제한 없이 먹는다. 이런 내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몸무게는 40킬로 대가 되지 않았으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다부지고 탄력 있는 허벅지와는 거리가 먼 물렁살이 흔들거리고 있는 몸이지만 나는 만족한다.


모델처럼 날씬한 몸매는 아니더라도 살의 분포가 고른 균형 있는 몸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적절한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불안감도 줄어들었다. 비싸기도 하고 다시 살 수 없는 제품이라 아껴 입는 바지를 계속 입고 싶고 체중이 불어나 새 옷들을 사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감도 줄이기 위해 나는 계속 이 생활을 유지할 것 같다. 무엇보다 지금 거울에 비친 내 몸이 마음에 든다. 이대로 머물러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살들아. 지금 그 자리를 지켜주렴. 엉뚱한 곳에 붙을 생각 하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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