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소비
[만년 구짜]오래 쓸 수 있는 물건, 오래된 물건 등으로 사용하는 전라도 말이다. 아무리 오래 지나도 그 값어치를 간직하고 있을 거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아빠는 충청도 사람인데 할머니가 목포 분이시라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인지 전라도 사투리를 종종 쓰셨다. 무슨 물건이나 옷을 고를 때면,
"이건 소재가 좋으니까 사두면 만년 구짜지. 유행도 안 타는 디자인이네." 라며 계산대로 가져가셨다.
나는 이 단어가 듣기 좋았다. 명품 브랜드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리고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도 마음에 들었고 입으로 소리 내었을 때 촥 감기는 어감 또한 좋았다.
물건을 고를 때, 내가 필요하고 소유하고 싶어서 가격 상관없이 구매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격 대비 성능과 쓰임새를 꼼꼼히 따져보고 최저가를 찾아 열심히 발품을 판다.
직접 발로 뛰어다니는 수고로움도 있을 테고 눈이 따끔거릴 정도로 모니터를 들여보는다 보는 불편함도 있겠지. 그렇게 해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하면 다행인데 '조금 더 주고 좋은 거 사야 했어.' 하는 후회와 함께 반품이나 교환 같은 번거로움을 동반하게 되는 구매도 있다는 게 아쉬운 지점이다.
조금 더 돈을 들이더라도 좋은 걸 사야 하는 때와 그 물건의 종류는 개인마다 다 다르다.
어떤 이는 상차림에 들어가는 그릇이나 주방기구에 전혀 돈을 투자하지 않고 자전거 용품 구입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 옷은 길거리 상점에서 값싸게 구입해도 그 옷을 보관하는 장이나 가구는 비싸도 선호하는 디자인의 물건으로 망설임 없이 구매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는 패션용품이 그렇다.
나는 의상과 액세서리 모두 하나씩 만년 구짜가 있다. 흰 셔츠, 실크 원피스, 캐시미어 니트, 리넨 바지, 양모 코트, 가죽재킷, 순면 티셔츠와 데일리용, 행사용, 여행용으로 분류된 가방과 신발들. 한 품목 당 한 개씩 모두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한 좋은 제품들이다.(사람마다 고가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목걸이 반지 귀걸이 팔찌 시계도 모두 한 개씩은 좋은 것, 이름이 알려지고 들으면 알 만한 브랜드의 상품을 구매했었다.
나 자신이 명품이 되면 된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수긍한다. 하지만 소재가 좋고 패턴이 돋보이는 옷을 저렴하게 파는 곳은 드물고, 소위 명품 브랜드에 소속된 디자이너들의 노하우와 한 끗 다른 디테일을 인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매장을 찾는 거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분별없이 명품이니 안 예뻐도 로고 값 하니까 라며 구매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에 속하지 않는다.
20년 가까이 물건을 구매했던 소비자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그 당시에는 비싸다 생각할 수 있는 물건이 세월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사용해도 전혀 어색함 없이 나에게 편안함과 만족감을 주고 있으며 어떤 것을 입고 들고 신어야 할지 매번 고민하지 않게 해 줘서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때마다 어떤 아이템이 나에게 최선이며 나를 돋보이게 하는지 구매 전에 고민하고 신중하게 살펴본 결과 적어도 나는 '입을 옷이 왜 이렇게 없어. 여기에 이건 안 어울려.'라는 생각을 계절마다 떠올리는 수고로움은 덜었다. 오래 쓰고 있고 쓸수록 그 값어치를 하는 만년 구짜가 당신에게는 무엇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