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성

아들

by 엘리

나는 우리말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어쩌다 이렇게 불리게 되었을까 싶은 단어들이 많은데 '아들' 도 그중 하나다.


좀 더 강한 소리가 나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말이다.

몸의 구조도 다르고 성별이 같지 않기 때문에 내가 지나온 시간들로 미루어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미리 헤아려보기도 어렵다. 그것이 내가 육아를 하면 어려웠던 점이기도 하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며 궁금증을 가지고 쉴 새 없이 떠든다.

목소리는 작은가? 그렇지도 않다. 크고 또렷해서 자주 듣게 되는 왼쪽 귀의 청력이 떨어졌다는 진단도 받았었다. 소리칠 때도 많고 음량의 조절이 미숙하다 보니 실제로 귀가 찢어질 듯 아팠던 적이 많다.


재미를 느낀 놀이를 질릴 때까지 한다.

체력은 언제나 100퍼센트로 가득 차 있고 쉽사리 지치지 않는다.


해가 뜨거운 여름에도, 칼바람이 불어 코가 베일 듯 추운 겨울에도 그는 개의치 않는다.

신나게 뛰어놀고 그날 체력적인 에너지를 소모하지 못하면 큰 일 나는 것 마냥 망아지처럼 뛰어다닌다.

그렇게 힘을 빼지 못한 날에는 잠자리에 들어서 바로 잠들지 못하고 1시간이 넘게 애를 먹인다.


같이 자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누워서 아이가 잠들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는 일.

1시간가량 그 시간이 지속되면 머릿속에서 왜 안 자나, 나 그거 봐야 하는데, 나 이거 올려야 되는데, 찾아봐야 하는데 등의 잡생각과 온갖 짜증들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팔로 다리로 내 몸을 여러 차례 차고 때리고 뒤척이다 잠들면 온 몸 가득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주먹을 피해 힘주고 있던 나의 긴장된 근육들이 풀리면서 그날 먹은 저녁이 소화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위험하다 싶은 행동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한 번씩 해보니 무릎이나 정강이 쪽에 상처가 나는 일이 많고 다정적인 놀이보다 동적인 놀이를 좋아하니 그에게 다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다.

자신이 다치면 속상해하고 신경 쓰는 내 마음을 알기는 할까?


이제 여섯 살, 제법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또래와 어울리며 사회성도 배워가고 있는 나와 다른 성별의 작은 아이. 아들이라고 불리는 그. 관심사도 성격도 다른 우리 둘. 맞춰나가기 어려웠던 날들.


누구도 나에게 육아는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는 일이라고 일러준 적 없었던 걸 보면 그들은 할만했던 일이었나? 나는 엄마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인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배워나가는 게 서툴렀고 이런 관계는 처음이라 어려웠던 것뿐이라 여긴다.


내가 힘든 만큼 저 작은 아이도 세상에 적응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엄마를 만나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

내가 최선의 것을 주었다고 생각해도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상대. 하지만 그것이 생존방법인 상대.


오늘도 글을 쓰는 내 주위를 어슬렁 거리며 그만하고 놀아달라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급하게 글을 마친다. 그냥 오늘은 육아에 지친 동지들에게 그대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이 말이 내게 위로가 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