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슈퍼마켓

두서없는 생각들

by 엘리

마트 가는 날이 설렐 때가 올까?


장보기 리스트를 작성하고 마트에 가는 것과 즉흥적으로 들러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차이가 있다.

내 경우에는 그렇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미션과도 같은 장보기는 피로함을 주지만 굴러들어 온 눈먼 돈이 생기거나 계획 없이 정말 필요하고 먹고 싶어서 슈퍼마켓에서 구매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냉장고 안 반찬과 음식재료들이 떨어져 가고 생활에 필요한 필수용품들이 바닥을 드러내면 종이에 하나씩 적어가며 구매 목록을 작성한다. 한 달에 쓸 수 있는 고정 금액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외식을 줄이거나 간식비를 줄이거나 둘 중 하나는 결정해야 한다.


동생이 말한 대로 예산 신경 안 쓰고 그 순간에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카트에 아무 고민 없이 넣고 계산하는 거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이 생각난다.


같은 식재료를 사더라도 어느 브랜드가 더 가격이나 용량이 나은가 비교하고 예산이 초과될 것 같으면 집었던 것도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내려놓곤 했던 것을 떠올리면 벌써 피곤함이 몰려온다.




초등학생 때 동네에 처음 마트가 들어왔던 모습이 떠오른다. 동네에는 슈퍼마켓이 세 곳 있었는데 3층짜리 마트가 들어오고 나서 한 곳만 남기고 나머지는 문을 닫았었다. 사탕도 주고 요구르트도 한 개씩 더 담아주시던 인심 좋은 슈퍼 아저씨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그곳을 지날 때마다 괜한 마트를 미워했던 기억도.


동네 사람들이 엄마에게 와 없는 게 없다, 신기하다, 싸다 라고 이야기 들으면서도 나름의 의리를 지킨다고 한동안 가지 않다가 친구가 사 온 핑크 판다 인형에 마음이 뺏겨 처음 방문했던 날, 이런 신세계가 있나 했다.


서울에서 5살 까지, 그리고 경주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살았던 중학생이 돼서야 백화점에 가봤었다.

그러니 초등학교 2학년 때 마주한 3층짜리 마트는 나에게는 놀라운 곳이었다. 수산물, 정육, 청과 코너가 한 장소에 다 몰려있고 각종 생활용품에 문방구에서만 볼 수 있던 학용품과 인형들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계산을 맡은 점원들은 동네 슈퍼마켓 사장님과 같은 친절함이나 넉넉한 인심을 기대하긴 어려웠으나 그들의 소임은 다 하고 있으니 잘못되었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점점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걸음이 줄어들고 방과 후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1층부터 3층까지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동네에서 기업형 슈퍼마켓 말고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 되었다.

있더라도 편의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이어도 대형마트의 축소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작지 않은 규모의 모습들이다.


고등학생 때 살던 동네에 라면 한 봉지와 소주 한 병을 사는 아저씨에게 종이컵과 500짜리 오징어 다리 간식을 서비스라며 주고 엄마 두부 심부름 갔다가 새우깡이 먹고 싶어 집었는데 돈이 부족해서 내려놓는 아이에게 얼마 부족하냐고 다음에 와서 주라고 과자를 들려 보내던 슈퍼마켓 아주머니의 모습들은 이제 보기 힘들겠지.


그 대신에 대형마트가 그 자리를 차지했으니까.


용량이 정확히 표기되어 더도 덜도 받을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정육코너, 남는 거 주는 거니까 미안할 거 없다고 고등어 담은 비닐봉지에 조개 한 움큼 넣어주던 생선가게 아저씨가 없는 수산물 코너, 흠 있다고 한 개 더 얹어주는 거 없는 과일 코너. 더하기도 빼기도 없는 정확한 계산법의 마트. 그렇지만 편리한 마트.




내가 투자한 것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는 게 잘못인 거다. 공짜 너무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고 했는데 하하.


열심히 모은 쿠폰과 구매 목록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장 보러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동선 파악 잘해서 카트가 헛바퀴 굴리는 일 없도록 정신 차리고 물건 담아와야겠다. 벌써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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