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갑니다

전시 관람

by 엘리

아이가 오후 2시 30분에 유치원 차량에서 하차하면 잠들기 전까지 내 시간은 없다.

그래서 오전 중에 바쁘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웬만한 일은 시간 내에 가능하지만 늘 쫓기듯 아쉬운 만남과 서두르게 되는 일처리를 하고 돌아올 때면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대부분의 엄마들이 가지는 감정일 거다.


그런 나에게 서울에서 하는 전시를 보러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이 많이 붐비고 줄 서서 대기하는 시간이 많은 주말에 방문한다는 건 생각조차 못 하는 일이고 평일 오전 시간에 여유롭게 보고 싶어도 아이 등 하원 시간과 왕복시간 때문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어느 날 나에게 "내가 봐줄 테니까 보고 싶었던 전시 보고 와."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동생이 마중한 뒤 내가 돌아오는 시간까지 돌보아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렇다면 막차 시간까지 여한 없이 전시회도 보고 핫하다는 공간에 들려보기도 하고 서울에 자리 잡고 살고 있는 친구들과 맛집도 가보고 싶었으나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을 미혼자 동생이 마음에 걸려 그럴 수 없었다.

저녁 식사 전까지, 오후 7시쯤 집에 도착할 수 있는 일정으로 계획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었었지.


오전에 아이를 보내고 오래 걸어도 편한 운동화와 간편한 복장을 하고 마스크를 쓰고 역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새털같이 가볍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하늘이 나를 공처럼 통통 튕겨주는 느낌.


열차표에 적힌 자리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관람할 전시를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작가들의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갤러리 특유의 조명과 분위기, 그 향취- 관람 전 느끼는 묘한 흥분, 싫어할 수가 없다.


길 찾기로 검색해서 처음 가보는 곳에 나 스스로 당도했을 때 나의 쓸모를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되고 어디를 가도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공들인 배치와 조명, 고요하지만 정숙한 분위기의 전시장에서 그림 속 작가의 표현방식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는 관람객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인상 깊었다.

덕수궁 돌담길도, 광화문 거리도, 서촌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작은 가게들도 만족스러웠다.


발목이 시큰거리고 발바닥이 불에 덴 것처럼 따끔거려도 한 군데만 더, 한 곳만 더 하면서 근처 미술관들을 방문했고 손에는 전시 관련 상품들과 팸플릿 등이 가득 들려 있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내게 이런 시간을 내어준 동생에게 줄 선물을 사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도착해서 그날 하루의 일들과 감상을 이야기하고 저녁을 차리고 퇴근한 남편과 아이와 식사를 하며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아이를 재우고 조용히 식탁에 앉아 찍어둔 사진을 넘겨보며 생각했다.


'매일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림이 좋고, 진심을 그리는 작가들을 존경하고 특별히 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예술을 사랑한다.

내가 붓으로 색연필로, 또 여러 도구들로 직접 해봐서 안다. 그 그림이 나오기까지 작가의 노력과 성실함을.


간단한 그림처럼 보여도 색감과 빛과 그림자를 표현하는 기술, 수많은 고민과 연습으로 메시지를 담는 방식을 찾아낸 끈기와 내공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 시간들을 공유하며 감동하러 나는 미술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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