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루틴
20대 때는 사는 것도 치열했고 정신없이 흘러가서 미용에 관해 큰 관심이 없었다.
패션에는 흥미를 느꼈지만 그 흔한 머리 염색이나 네일 아트 같은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30대가 되면서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가지런하고 정돈된 손톱이 예뻐 보이기 시작해서 처음으로 네일아트를 받으러 갔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오일을 발라주고 손톱을 원하는 모양대로 잘 다듬어 준 다음 골라둔 색을 칠하고 램프에 굽고 다시 바르는 과정을 반복한 후 로션으로 마무리해 주면 완성되는 그 과정이 생소하면서도 묘하게 매력 있었고 기분전환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 예뻐진 것 같다고 말하니 눈썹 문신과 아이라인 문신을 했다고 아팠지만 하고 나니 관리하기 편하고 마음에 든다고 했다. 눈썹 모양 하나 만으로 인상이 달라졌고 또렷해진 눈매가 인상 깊었다.
이 외에도 매일 같이 마스크팩을 붙이고 잠드는 친구, 왁싱부터 마사지까지 두루 섭렵한 아는 언니, 시술의 장점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피부과와 치아교정, 성형외과 정보에 통달한 아는 동생까지 그들 모두 예뻐졌다.
나는 겁도 많고 통증도 잘 느껴서 아직 눈썹이나 아이라인 문신도 못해봤고 치아교정은 더 꿈도 못 꾸는 쫄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피부과 레이저 시술은 받아 보았다. 피부결이 부드러워지고 맑아져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시도했는데 결과는 대만족까지는 아니지만 마음에 들었다.
이후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해서 크림이며 에센스 아침저녁으로 발라주고 겨울에 되도록 히터 틀지 않고 건조하지 않게 가습기 늘 켜 두고 콜라겐과 아미노산 챙겨 먹고 종종 앰플도 챙겨 발라준다.
한 두 개씩 자라난 흰머리를 핑계 삼아 염색도 해 보고 눈썹도 다듬고 여름에는 발톱에도 예쁜 색을 입혀주었다. 매혹적인 향이 나는 바디로션을 몸에 바르고 발 전용 크림으로 마사지, 오일로 마무리하면 외출 준비 끝.
귀 청소도 잊으면 안 되고 코털 정리도 해야지. 면봉에 오일을 묻혀 귓바퀴와 귀 뒷면까지 잘 닦아주고 콧 속도 정리하고 입술 보습되게 립밤 하나 챙겨서 집을 나선다. 돌아와서 클렌징 또한 이중세안으로 꼼꼼하게.
나와 같이 사는 남자는 참 피곤하겠다며 혀를 내두르고 외면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고 몸이 건강한 게 최고라고 말하지만 내가 이 관리의 끈을 놓게 되면 글쎄.. 지금처럼 다정하고 부드럽게 날 대해줄까?
불어난 살과 거친 피부, 여기저기 거스름이 나고 정돈되지 않은 손과 발, 아무렇게나 엉켜있는 머리칼과 삐져나온 코털, 시큼하고 쿰쿰한 냄새. 과연 그가 이 모습을 견딜 수 있을까?
꼭 예뻐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돈도 들여야겠지. 그래서 이왕 하는 거 예뻐 보이기까지 하면 좋으니 더 신경 쓰는 건데 사실 나도 좀 피곤하다.
대충 슥슥 빗어도 풍성하고 멋져 보이는 헤어스타일, 특별히 뭘 바르지 않아도 광이 나는 피부, 혈색 좋은 붉은 입술에 타고나기를 은은한 향이 나는 체취를 가진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확실히 나는 아니다.
그래서 지칠 때까지 수많은 가꾸기를 해오고 있지만 언젠가는 시들해질 때가 오겠지?
미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청에 대한 기본만 갖추며 살아가고 싶다.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