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을 하지 않는 날 빼고는 어깨가 쉴 틈이 없다. 무엇인가 한 가득 쑤셔 넣은 무거운 가방 때문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도 빈손으로 나가는 날이 없다. 지금이야 코로나로 외출을 잘하지는 않지만 가까운 마트라도 가려고 하면 준비하고 가방에 넣는 시간이 길다. 보지 않더라도 책 한 권은 필수요, 아무리 꾸밀 시간 없는 아줌마지만 이 사이의 고춧가루 정도는 확인하고 옅어진 화장 사이로 기미, 잡티를 감출 커버 팩트도 필수로 담아야 한다. 손 소독 젤, 물티슈도 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상으로 챙기는 여러 물건들을 담고 보면 산달이 가까운 임산부의 배 마냥 가방은 부풀어있다. 지갑은 또 어떤가? 할인카드, 신용카드, 현금과 동전 , 거울까지 담고 보면 나가기 전부터 무거운 짐들로 어깨가 무겁다.
그걸 보는 남편과 지인, 언니는 꼭 한 마디씩 한다.
“어깨 내려앉겠다. 그만 쫌 들고 다니라.”
“피곤하게 산다. 가볍게 좀 살아라.”
“쓸데없는 걸 왜 그렇게 들고 다니노?(부산 사투리) 가볍게 다니라.”
“그러니까 어깨 아프다고 하지, 보지도 않는 책을 뭘 그리 들고 다녀?”
나는 일주일에 몇 날을 어깨 통증으로 시달린다. 사람들의 핀잔을 듣고 나서 가볍게 챙긴 것이 이 정도이지만 내가 봤을 땐 하나도 뺄 것도 없고 다 필요한 것들이다. 내 마음속의 상태를 알려면 나의 주변을 잘 살피면 된다고 했던가?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책상이 항상 어수선했고 욕심이나 염려가 많은 날에는 정리되지 않은 가방 속에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뒤엉켜있다. 혹시나 아플까? 혹시나 필요할까? 혹시나 보지 않을까? 어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 챙긴 물건들은 에코백에서 뒤엉켜 아우성을 쳐댔다.
모든 것이 필요하다는 욕심과 이것이 없으면 안 된다는 불안과 집착이 가방 속을 엉망으로 만들고 내 어깨를 혹사시킨 건 아닐까...
언젠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저장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봤다. 잡동사니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에 집착을 하여 버리지를 못해 집을 쓰레기 더미로 만든 사연이었다. 그걸 보면서 ’아. 나의 마음에 여유와 비움을 만들지 않으면 나도 나이 들어 가방 속에 이것저것 다 필요해서 꾹꾹 쑤셔 넣고 집착하겠구나.‘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마음의 여유를 위해 가방 속을 하나씩 비우기로 했다. 색 색깔 볼펜 여러 개에서 한, 두 개로 가벼운 책 한 권 아니면 그냥 노트만... 동전 수두룩한 지갑에서 가볍게..
막상 가벼운 가방을 들고 나와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만약의 대비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은 대부분 쓰이지도 않으며 이것도 중요하다, 저것도 중요하다 했던 것은 진짜 중요한 일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무거운 어깨에 진 내 가방이 가벼워지자 내 마음도 가뿐해진다. 어깨의 통증도 줄어들었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비롯된 욕심이기에 오늘도 조금씩 욕심과 염려를 덜어놓고 가방에게도 숨 쉴 틈을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