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미한 작용, 그러나 결코 사소하지 않은 화장품

#화장품의 정의 #화장품법 제2조 #인체에 대한 작용 경미

by Elly K


며칠 전, 오래된 앨범을 꺼내보다가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스무 살 무렵, 뾰루지가 잦던 시절의 제 얼굴이었죠.

사진 속의 저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피부 때문인지 그 웃음이 어쩐지 불안해 보였습니다.

지금 보면, 앳된 그 모습 그대로 예쁘게 느껴지는데 당시의 저는 거울을 보며 단점만 찾기 바빴죠.


그 무렵의 저는 늘 광고 문구에 흔들렸습니다.
“며칠이면 달걀처럼 매끈해진다.”
“한 번만 써도 트러블이 사라진다.”

그 말들을 믿고 서둘러 새 화장품을 들였지만, 거울 속의 모습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남은 건 실망과 낭비, 그리고 무겁게 내려앉은 마음뿐이었지요.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화장품은 애초에 기적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우리나라 「화장품법」은 화장품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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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법」제2조 제1호 “화장품”이란 인체를 청결ㆍ미화하여 매력을 더하고 용모를 밝게 변화시키거나 피부ㆍ모발의 건강을 유지 또는 증진하기 위하여 인체에 바르고 문지르거나 뿌리는 등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물품으로서 인체에 대한 작용이 경미한 것을 말한다. 다만, 「약사법」 제2조제4호의 의약품에 해당하는 물품은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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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이란 인체에 대한 작용이 경미한 것을 말한다."


짧은 이 문장 속에는 화장품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화장품은 언제나 경미한 작용만을 허락받습니다.


경미하다는 말은 흔히 ‘하찮다’는 뜻으로 오해되곤 합니다.

그래서 종종 “그럼 효과가 없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듣기도 하지요. 하지만 사실 이 표현 속에서 나름 중요한 의미를 꺼내볼 수 있습니다. 만약 화장품 한 통으로 레이저 시술처럼 기미가 싹 사라지고, 세수 몇 번으로 약처럼 트러블이 없어져버린다면 어떨까요? 잠시 즐거울지 몰라도 그만큼 큰 부작용이 뒤따를 겁니다. 그래서 강력한 치료와 시술은 반드시 의료진의 손에서만 이루어지죠. 반대로 화장품은 매일, 누구나, 반복해서 쓰는 생활필수품이기에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경미한 작용’이라는 말은 곧 '부작용이 없을 만큼 안전한 범위의 작용'을 뜻하고 있습니다.


피부는 우리 몸을 덮고 있는 가장 큰 기관(organ)입니다. 게다가 소화기관이나 호흡기관처럼 몸속에 숨어 있지 않고, 늘 바깥과 맞닿아 있지요. 햇빛이 내리쬘 때,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 미세먼지와 매연이 가득할 때 피부는 끊임없이 환경에 맞서야 합니다. 피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작은 상처가 곧 병으로 이어지고, 몸 전체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피부를 지켜주는 것이 바로 화장품입니다. 때로는 보호막이 되어주고, 때로는 불순물을 닦아내며 피부가 제 기능을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그런 역할을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지요.


그럼에도 화장품의 가치는 종종 왜곡됩니다. 광고 속에서 마치 치료제인 양 기적을 약속하는 문구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SNS에는 ‘하룻밤에 달라지는 피부’를 내세우는 광고가 넘쳐나지만, 사실 그런 약속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허상에 불과합니다. 화장품은 치료제가 아니며 기적을 흉내 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이런 허황된 광고들 때문에 정작 화장품은 ‘말만 번지르르하고 효과는 없다’는 누명을 쓰곤 하지요. (더구나 그런 광고들은 광고 관련 법마저 어기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피부는 대략 한 달 주기로 새로워집니다.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어 표면으로 밀려 올라오고, 각질이 되어 떨어져 나가기까지 한 달은 걸린다는 것이지요. 며칠 만에 눈에 띄는 변화를 원하지만, 사실 피부는 그 조급한 기대에 쉽게 응답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화려한 광고에 기대어 수많은 제품을 사들였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피부는 느리지만 자기만의 리듬을 따라 회복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화려한 약속을 내세우는 제품들을 내려놓고, 가장 기본적인 화장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바르다 보니, 어느새 요동치던 피부가 차분히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건강한 피부가 주는 안정감을 온전히 누리고 있습니다.


잠시 덧붙이자면, 저는 광고뿐 아니라 법령의 표현도 화장품의 위상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경미하다’는 표현은 '안전한 범위 안에서의 작용'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사실 일상에서는 흔히 ‘하찮다’, ‘사소하다’라는 의미로 읽히곤 하지요. 그러다 보니 화장품을 아무리 써도 소용없다는 무용론에 빌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점이 늘 아쉽습니다. 화장품의 본래 역할을 더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법령 속 표현도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문구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화장품이란 인체에 대한 작용이 [ ]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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