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행한 외모 덕에 얻은 것

by 엘샤랄라

사실, 니체를 좀 벗어나

나만의 주제를 더 다양하게 찾아보며

글을 써야겠다고 며칠 전에 마음을 먹었는데,

그 마음이 이토록 가볍게 고꾸라지는 건

그가 던진 명제 때문이다.

오늘도 그의 명제를 보며 피식 웃는다.

저런 생각을 나도 안 해본 건 아닌데,

누구나 했을 법한 생각을 이토록 툭 던져 놓으니,

나는 결국 토를 달고 싶어졌다.

혹시나 하고 펼쳤는데, 역시나 나는 쓰게 된다.




딸에 대한 모든 엄마의 애정이 그러하듯,

엄마는 항상 나보고 예쁘다 하였다.

짙은 윗눈썹과 긴 속눈썹, 쌍꺼풀 진 눈은

언제나 '백만 불짜리'라며, 굉장한 자부심을 과시했다.

하지만, 막상 나는 눈만 예쁠 뿐 그 외의 다른 부위에

대해서는 수용하지 못했고, 불만이 가득했다.

콧대는 곧았지만 조금 더 높았으면 좋겠고,

두툼한 입술은 얇았으면 했고,

보조개가 있었으면 했고,

피부톤이 더 하얬으면 했고,

보시다시피 '했고'의 나열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아빠에게 '코가 좀 더 높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꺼낸 적이 있는데,

그 정도면 '충분히 높은 거다'라며 역정을 내셨다.

내 눈에는 아닌데, 아빠 눈에는 그러하다니

가만히 있어도 두툼한 입술이 더 두툼해지는 나날이었다.


부모님은 예쁘다 하시는데, 실상은 너무도 평범한

나를 매일같이 마주하며,

'공부라도 해야겠다'라며

마음을 다잡은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아버지를

말리시려고 무척이나 치열하고 부담스럽게 싸우시는

부모님을 보며, 그 괴로움을 달래는 방법은

책을 읽거나, 공부에 매진하는 법뿐이었다.

학교에 가면,

적어도 거친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웠고,

마치 학교 밖 세상은 완전히 멈춘 듯이 보였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책 속으로 빠져 드니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숨기 위해.

그리고 외모로는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으니까,

다른 재능이라도 찾아서 인정받고 싶어서.

그 선택은 옳았다.

그나마 힘겨울 수 있었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버티게 해 주었고, 내 나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며 충분히 인정 욕구를 채웠으니까.


그렇게 나는 스무 살이 되었고,

여전히 '후덕한 이모' 같은 외모로 지속적으로

학업에 매진하는 데에 별다른 방해 요소가 없었다.

'후덕한 이모' 느낌이 어느 정도냐 하면,

그 당시 대기업에 들어가 잘나가던 사촌오빠는

명절에 나를 보고 '지금처럼 계속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라'며 되도 않는 소리를 해댔고,

대규모 교양 강의에서 과 선배는 뒤에서도

'너의 떡대가 보여 찾는데 무리가 없었다'며

생 양아치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껄였다.

어쨌든, 그랬다.

그 자체로 가장 아름답다는 바로 그 스무 살에.

하지만 다행히 나 또한 그 상태로 머무리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외모가 역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부쩍 바디라인이 살아나고, 얼굴이 피면서

후덕한 이모 같던 얼굴에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때 누렸던 '봄꽃의 아름다움'은

결혼과 함께 두 아이를 낳으며 빠르게 사그라들었지만.




내 나이 마흔둘,

두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웬만한 일들은 모두 스스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졌던

'여유'라는 것이 어느덧 성큼 곁으로 다가와 나를 어루만져주니, 분위기가 변한다.

아이들마저, 되려 스무 살 때 찍은 사진 속

엄마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 말해준다.

숙제를 덜 받으려는 심산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르치는 학생들은 여전히 삼십 대 아니냐며.

2월부터 시작한 한국무용 수업에서 함께 춤추는

여사님들께서는 '예쁜 사람'이라며 곱게 여겨 주시니,

때 아닌 '외모 칭찬'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수업에 절대 빠지지 않겠다는 강력히 결심하는 나다.


그렇다 할지언정,

중년에 접어든 이때에 흔들리는 나를 잡아주는 건

결코 외모가 아니다.

유독 정수리 부분에 몰아서 나는 하얀 새치들과

웃으면 눈가에 확연히 드러나는 잔주름들,

부쩍 신경 쓰게 되는 코 옆의 긴 팔자주름,

탄력을 잃어가는 듯한 피부는 이제 좀 즐거워지려는

삶에 찬물을 끼얹기 일쑤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읽어야 할 책이 있고

만나야 할 작가들이 있고, 쓰고 싶은 글이 있기에

이십 대의 활력과 뇌의 탄력 정도는 자신 있다.

그래서 쓰지 않은 날엔, 유독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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