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여.
우리가 젊었을 때,
우리는 가장 고통스러웠다.
-프리드리히 니체
김종원 작가의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그가 뽑은 니체의 문장에
나의 사색을 더해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마지막으로 글을 발행했던 5월 21일은
계엄사태가 터지고 뜻하지 않게 빨라진
대선시계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내가 대선에 나간 것도 아닌데 그저 문득,
나는 브런치에 쓰던 글을 중단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 갔다.
그리고 다시 펼친 그의 책은
'글쓰기의 필요성'을 종용하고 있었다.
'알겠다구요, 그래서 다시 이렇게 쓰잖아요.'
라며 그 동안 글을 쓰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닌데,
괜히 허공에 대고 투정거린다.
입을 삐죽대고 한 손으로 턱을 되며,
나는 결국 인정한다.
'더 썼어야 했다.'
그저 그건 여지없이 자만이었다.
부리지 말아야 했던 여유였다.
박완서 작가가 생전에 했던 말마따나,
지금 정도의 두뇌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얼굴에 에센스를 바르듯
두뇌에도 영양, 보습 에센스를 듬뿍 발라줬어야 했다.
보이지 않는 너머에 시선을 두지 못하니
눈 앞에 것에 집중함으로
잠은 푹 잤지만 시냅스는 뚝뚝 끊긴다.
나이 먹기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다시 이십대로 돌아가라면 그 또한 두려움이다.
막막했던 그 시절,
그저 앞만 보고 달렸을 뿐
쫓기듯 뛰어가기만 했을 뿐
돌아볼 줄 몰랐고, 멈춰서 숨고를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분수를 알아간다.
황금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찾기보다,
숲으로 우거진 곳곳에 숨은 작은 샘물에 족하다.
그래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 가운데
내가 해야할 일은
내 작은 샘물이 마르지 않도록
날마다 물을 길어오는 일.
혹은 흐르도록 길을 터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