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수 있는 최고의 사상은
대중의 이해를 구하기 힘들다.
-프리드리히 니체
글을 써야 하는데, 말이 떠오른다.
마흔의 내가 돌아보면 거칠기 짝이 없던
이십 대의 내가 보인다.
나는 상대에게 대화의 여지를 남기는
방법을 몰랐다.
나누는 대화에 일일이 반응하며
수긍하는 듯하다가도 반박하기 일쑤였다.
겉으로는 씩씩한 듯 보였어도
사실은 연약했던 심성을 고스란히 보이는 듯한
몸부림이었다.
이는 대화 당사자에게 온전히 이해받기 위한
갈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뱉은 말에 어떤 오해가 있거나 말거나,
지나치지 못하는 소심함은
뒤돌아서면 항상 씁쓸함을 남겼다.
지나칠 수도 있고,
판단의 몫을 상대방에게 과감히
넘길 수도 있어야 했다는 생각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한 최고의 사상조차
대중의 이해를 구하기 힘들다는
니체의 말로 인한 자각이다.
때로는 나도 나 자신을 온전히 알지
못할 때가 있어 답답한데,
타자가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
내가 그려낸 나로 그가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것은 무지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해를 구하려 하기보다
여지를 남길 수 있는 용기를 키워 보련다.
당신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그러하다면
'그렇군요'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