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다

by 엘샤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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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라면 적을 사랑할 수도,

친구를 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고등학교 2학년 국어 시간,

그때 그 국어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난 너희들한테 내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이

너무나 아까워."


처음 선생님의 그 말씀에 나는

반발심부터 들었다.

어떻게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건지,

선생님의 본분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가르치고 나누는 것이 아닌가? 하며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 말에 대한 선생님의 저의는 그저

궁금증만 가득 남긴 채 세월 밑으로 묻혔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과외를 하기 시작한다.

학생을 앞에 두고 수업을 하는데 문득,

"진짜 내가 이렇게 수업을 받았더라면, "

흡사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가르쳤더라면

나는 또 한 번 달라져 있을 텐데 하는,

그러면서 내가 학생에게 쏟고 있는 이 에너지가

나 자신에게 쏟아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바로 그 아쉬움으로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게 되었던 듯 하다.


두 아이를 낳고, 강사 일은 계속되었다.

수업을 하면서 문득 나는 '지금'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렇게 수업에 쏟고 있는 나의 시간과

열정을 우리 아이들에게 쏟는 게

더 가치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 동안은

막상 내 아이를 가르치지 못한다는 물리적 모순은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이 하셨던 그 한마디를

떠올리게 했다.


"아깝다."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끼면서도

나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양가적인 감정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

아들이, 딸이,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영어를 가르쳐."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았고,

엄마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또한

곁에서 언제나 지켜보고 있음을 알았다.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끝은 없다.

실력이 뛰어나면 뛰어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마음이 쓰여 더 알려줘야 하고,

더 챙겨야 한다.

단지 오늘 한,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났다고

서비스 요금을 다했다고

나의 일이 끝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국, 지지고 볶는 바로 그 과정 속에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나의 아이들이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보았다.

우리 아이들 또한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곁에서 지켜보며 스스로 깨닫는 것이 있었다.


이젠,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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