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를 위해서는 스스로 괴로워해야 하며
이전에 없던 많은 변화가 요구된다.
프리드리히 니체
예전에 썼던 글을 모으고 있다.
출판되지 않은 글이다.
내가 쓴 글이었지만 낯설기도 하다.
나에게도 이런 생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러면서 다시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지
하며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 글을 차곡차곡 모아 본다.
모두 모아 놓고,
퇴고를 시작한다.
꽉 막혔다.
분명 이 글을 쓰고 발행할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괴로움이 치솟아 오른다.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글을
나 좋다고 신나게 발행한 것만 같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보는 글이기에
그 사이 나 또한 달라진 바가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손을 봐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구멍이 숭숭, 허술하기 짝이 없다.
막막함이 몰려오고, 무기력해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 가지 확실한 건,
어쨌든 그때 써 놓은
말도 안 되는 품질의 글이
새로운 글을 지피기 위한
장작들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
겨울을 나기 위해 그간 참 많이 장작을 패 놓았구나.
어쨌든 써 놓았기에 나는 다시 이 글들과
인연이 닿았다.
써 놓지 않았다면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 당시 나만의 영감들은
그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을게다.
다시, 형편없는 글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 건,
그러한 이유로 너는 앞으로도
계속 쓰라는 내면으로부터의 명령을
귀 따갑게 들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