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소유하는 특권을 위한 대가는
아무리 비싸도 과하지 않다.
-프리드리히 니체
스스로를 소유하는 특권,
즉 온전히 내가 된다는 것.
그건 말 그대로 특권이었다.
그러하므로 나는 내 나름의 대가를
치렀어야 했지만,
그건 언제나 다음으로 미뤄졌다.
학부 시절,
다행히 학교는 교통편이 좋아서
지하철이든 삼화고속이든
그 무엇으로도 통학이 가능했다.
그만큼 주거비를 아낄 수 있었지만
대학생 생활은 그저 움직이면 돈이었다.
부모님의 부담을 덜고 싶어서
과외로 용돈을 충당했다.
그러다 딱 한 학기,
과외를 위해, 학원 알바를 위해
도중에 내 공부를 중단하고 학교 밖으로
나서는 일 없이,
그저 원 없이 공부할 만큼 공부하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학교 밖을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부모님께 용돈을 지원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전액 장학금을 탔다.
결혼 직전부터,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근 십 년간 감사하게도 일복이 많았다.
아이 낳고도 일을 계속할 수 있음에,
경기가 어려워도 학생이 들어오고 있음에,
코로나였어도 무사히 수업을 하고 있음에,
감사한 일 투성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온전히 내가 아니었다.
나의 지분이 온전히 나에게 있지 않았다.
고3 학생들이 가장 많았던 그 해,
끝까지 입시를 마무리하고
나는 다시 나에게 특권을 허락했다.
분명한 대가를 치르고 시간을 허락했다.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나, 둘씩 도전했다.
그것 역시 배움이었다.
우연히 그 배움은 글쓰기였다.
그리고 그 해,
얼떨결에 나간 백일장에서
산문부 장원을 수상했다.
분명한 대가를 치르겠다 결심하고
온전히 내가 나를 소유하는 특권을 손에 쥐었을 때
나는 그 특권을 원 없이 누렸다.
그것이 특권임을 알고 누릴 수 있었던 건
결국
누적된 결핍의 힘이었다.
결코
거저 얻은 특권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 가치를 본능적으로
알았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