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책임을 회피하려 하지 않고,
또한 타인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고
하지 않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자유란 자기 책임에 대한 의지를 갖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내가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순간은
바로 통지표에서였다.
초등학교 1학년 6반 48번,
'활동에 책임감을 갖고 임함.'
1년 동안 나를 관찰하고 적어주신
초등학교 통지표 속 선생님이 써 주신 한 줄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초등 6년간의 기록을 쭉 훑어보며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본질적 성격이
생각보다 크게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안에는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히 냉철한 분석이 담긴 평가도 있었다.
선생님의 한 줄 속 처음 등장한 단어
'책임감'
그 단어의 의미를 나는 곱씹었고,
어쩌면 이 단어는 곧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준
단어이기도 했다.
평가는 이렇게 자기 예언이 된다.
두 아이가 개학을 했다.
개학 직전 가방을 챙기며 딸아이는
까맣게 잊고 있던 방학숙제를 생각해 냈고,
초등학교 2학년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책은 열심히 많이도 읽었는데
독서록은 하나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다독여지지 않길래 그럼 이 시간에 쓰고
잘 거냐 했더니, 기어코 책상에 불키고 앉았다.
결국 한 편을 쓰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딸은 선생님께 숙제를 가져오지 못했다
하고 스무 편의 독서록을 모두 써냈다.
다른 과제도 끝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며
나의 초등학교 통지표를 살펴봤던 것이다.
개학 사나흘 전부터 악몽을 꾼다.
아직 개학날이 남았는데,
날짜를 깜빡하여 혼자 지각했다.
내신성적이 중요해진 고입 때는
허구한 날 가위에 눌렸다.
무당이 흔들어대는 방울소리까지 들었다.
영문과에 진학한 나는
수학시험을 치르는 꿈을 꿨다.
내일모레가 수학 시험 보는 날인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는 납량특집.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이면이었다.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이면이었다.
나는 그렇게 놓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이었고,
다시 또 그 줄로 내가 나를 감아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갑갑한 삶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그 줄이 문장이 되어 풀려나고 있다.
메고 다니고 들고 다닐 수 있는 악기가 있고,
자리를 지켜야 하는 악기가 있다.
피아노,
그랜드 피아노,
나는 피아노다.
긁히고, 다리가 부러져 있기도 하지만
나라는 방 안 곳곳에는 피아노가 여러 대다.
바다를 마주하는 언덕에 지어진 집 안에
널찍한 방 한쪽마다 피아노가 여기저기
놓여있고 쌓여 있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그 피아노를 꺼내서
조율하고 수리하며 소리를 내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