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가 실패는 아니듯

by 엘샤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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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블로그에 댓글이 달렸다. 보여주신 관심에 감사해하며 들어가 보니,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던 영어 교재 후기에 달린 댓글이었다. 그 댓글에는 도움 되는 내용에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채점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도 함께였다. 명색에 영어 강사로 밥 벌어 먹고사는데,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채점 상의 오류, 곧 나의 실수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사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테지만,-언급당하다니,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관련 글을 찾아보았다. 교재 인증 사진 속, 양말을 뜻하는 ‘Socks’에 ‘s’가 빠져 있었는데, 맞다고 채점되어 있었다. 이미 글은 발행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시간에 쫓겨 채점하다 보니 못 보고 지나쳤나 보다.


하지만 굳이 이 작은 실수를 언급하는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의도인지 의심부터 든다. 익명의 그 사람의 지적으로 사진을 삭제해 버릴까도 생각했다. 사진을 삭제하자니, 글의 맥락이 뚝 끊겼다. 그렇다면 기분 내키는 대로 아예 글을 내려 버릴까 하니, 그건 또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작은 실수에 이런저런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화끈거리던 얼굴이 제 온도를 찾아가며 도리어 댓글 작성자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그냥 대충 보고 지나칠 수 있는 글과 사진을 이리도 꼼꼼하게 봐주시다니 그 관심에 감사했다. 덕분에 나의 채점 오류를 알고, 사진 하단에 첨언을 달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저 기분 나쁘다고 치부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나는 섬세한 독자 덕분에, ‘실수에 조금 더 성숙하게 대처하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혼자서 드라마를 찍으며 붉으락푸르락 내적 갈등 속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글의 완성도를 높였다. 나 자신이 참 속이 좁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래도 나이를 허투루 먹진 않았구나 싶은 자부심도 올라왔다.


“Do you see how with each mistake she is becoming?”

『The Book of Mistakes』, corinna luyken


지적받을 실수가 있었다는 건, 내가 무언가를 시도했다는 의미다. 익명의 독자에게 지적받은 것은 아주 작은 실수였지만, 그 실수는 그동안 내가 해온 시도를 의미했다. 나는 아이에게 도움이 될 교재를 골랐고, 그 교재로 또한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후에 그 교재로 공부해 볼까 하는 다른 독자들을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그 작은 행위들이 모여 한 편의 글이 발행되었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하지만 ‘실수에 대한 따뜻한 지적’ 덕분에 완성도를 높였다.

시도 없는 실수는 없다. ‘실수’의 전후 행위를 뜯어 본다. 실수를 고치는 일이 직업인 나도 실수투성이다. 이제는 내 아이들, 학생들, 주변 사람들의 실수를 바라봄에 있어 그들의 노력을 먼저 인정해 주고, 따뜻하게 감싸주면서, 그 실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어졌다. 내가 한 실수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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